[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23> 온천동유적 쇠도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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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를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무꾼에게 쇠도끼는 금은보화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온천동유적 쇠도끼 주인공의 무덤에서는 단검이나 창 등 무기와 낫·끌 같은 농공구도 함께 출토됐다.
이 쇠도끼를 대량으로 만들고 독점한 집단은 분명 존재했으며, 그 집단의 수장은 철 공급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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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를 잘 알 것이다. 쇠도끼를 물속에 빠트린 나무꾼은 정직한 행동 덕분에 큰 보상을 얻었고,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진 다른 나무꾼은 자신의 유일한 쇠도끼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실, 나무꾼에게 쇠도끼는 금은보화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도끼는 인간이 자연을 개척하고 생존하기 위한 필수 도구이자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준 도구이니 말이다.
한편으로 고대 사회에서 도끼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파스케스(Fasces, 몽둥이 다발에 묶인 도끼)는 집정관 경호원(Lictor)의 의장용 무기로서 ‘결속을 통한 힘’을 뜻한다. 파스케스에 달린 도끼는 파괴적인 힘을 과시하며, 집정관의 권력과 통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도끼는 단순한 도구이지만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온천동유적 쇠도끼(사진)는 2010년 부산 금정산 자락 시민체육공원 조성을 위해 시작된 발굴조사에서 발견됐다. 이 쇠도끼는 약 2000년 전 무덤 속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때는 변한 진한 마한이 존재하던 삼한시대로, 부산은 변한에 속하는 곳이었다. 변한의 철은 주변 나라로 팔려 나갔다는 ‘삼국지위서동이전’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일찍부터 철기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온천동유적 쇠도끼 주인공의 무덤에서는 단검이나 창 등 무기와 낫·끌 같은 농공구도 함께 출토됐다.
그중 쇠도끼는 온천동유적의 모든 무덤에서 발견됐다. 5기 중 4호 무덤에서 쇠도끼 3매, 나머지 무덤에서 1매씩 출토됐다. 대개 쇠도끼는 1~2매 부장되며, 고위급 무덤에서는 10매 이상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수장급 무덤으로 알려진 경주 사라리 130호 무덤에서는 70매의 쇠도끼를 피장자 아래에 깔아 넣기도 했다. 이처럼 피장자의 부와 권력을 도끼로 과시하기도 했다.
쇠도끼를 무덤 모서리나 방위에 맞춰 1매씩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 의도적인 부장 습속으로 상장례 제의행위에 따른 흔적으로 보인다. 의례용 유물이 도끼라는 사실은 독특하지만 무속적 권위를 갖춘 도구의 의미도 가진 것이다.
쇠도끼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보면, 온천동유적 쇠도끼 역시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게 아니다. 이 쇠도끼를 대량으로 만들고 독점한 집단은 분명 존재했으며, 그 집단의 수장은 철 공급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천동유적 사람들은 철을 공급받을 수 있는 특권층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온천동유적 사람들은 쇠로 된 무기를 장착하고 쇠로 된 도구를 사용했으며, 무덤을 만들어 쓸 수 있는 상류층 신분이었을 것이다.
온천동유적 사람들에게 쇠도끼는 풍요를 가져다준 도구이자 신분과 권력의 상징으로서 ‘금도끼 은도끼’만큼 귀한 물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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