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거부’ 인권영화제…안성기·이장호·정태춘도 힘 보탰다
인권운동사랑방, 무모한 영화제 도전
자막은 자원봉사로, 재정은 시민후원
사전심의 검열 거부 뜻 밝히자
대중 영화·음악인, 조직위 참여나서
시민들, 인권과 희귀 영화에 큰 관심
화질·음질 문제에도 관객들 인내심
첫 영화제 1만5천여명 찾으며 ‘대박’
이듬해 2회 영화제는 시련의 연속
제주 4·3 다큐 ‘레드 헌트’ 상영 결정
보안법 내세운 경찰, 개막일 봉쇄해
인권영화제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지만, 무모한 결정이라는 점은 곧 드러났다. 영화에 상영할 작품들을 고르고 상영권을 확보하는 일, 영화 대사 번역을 해서 자막을 넣는 일, 영화제 장소를 잡는 일 등등 산은 너무도 많았다.
이런 모든 것을 넘어야 했다. 우선 영화제 개최에 가장 반대했던 류은숙의 공이 컸다. 영국 런던 앰네스티 본부 영상자료실에서 무려 300편의 영화를 스크린했다고 했다. 눈에 진물이 날 정도로 영화를 보고, 또 봐서 고른 영화 30편 정도를 갖고 들어왔다. 그다음에는 상영권을 확보해야 했다. 외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영화 관련 전문성도 없는 한국의 작은 인권단체에 상영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외국 영화 제작자나 감독들과 소통을 하는 일은 서준식과 류은숙이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면서 해결해갔다.
영화를 번역해서 자막을 넣자니 영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국어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또 영상에 자막을 넣는 작업도 필요했다. 이런 일들에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는데, 많은 이들이 모였다.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번역해온 것을 진영종 교수(성공회대 영어학) 등이 감수했다. 영화제 예산을 만드는 일도 필요했다. 전체 예산은 2500만원이었다. 우리가 확보한 재정은 시민운동지원기금에서 500만원을 받은 게 전부였다.
영화계 인사들도 조직위 참여
그런데도 영화제 관람료를 받지 않는 무료 영화제로 운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무슨 배짱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검열을 거부하는 표현의 자유 운동으로 진행하는데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배지와 해설 책자를 팔고,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서 재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제1회 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는 1996년 10월11일에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검열거부’라는 고난을 거쳐 치러질 인권영화제는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1996년에 헌법재판소는 오래된 영화의 사전심의에 제동을 거는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비디오라는 영상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전심의 검열이 남아 있었다. 국제영화제를 하기 위해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이 필요했는데, 이런 절차도 거부했다. 어차피 우리 영화가 영진위의 추천을 받기는 불가능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존엄’을 앞세운 인권영화제가 검열을 반대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지향한다는 점이 알려지자 조직위원회에 시민사회 원로들만이 아니라 영화계 인사들도 참여했다. 영화배우 안성기, 영화감독 이장호, 정지영씨가 참여했고, 음반 검열 폐지 운동을 벌여서 성과를 낸 가수 정태춘씨도 참여했다. 집행위원회에는 김동원 푸른영상 감독, 김명준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등 독립영화계의 대표적인 인사들과 이충직 중앙대 교수, 김혜준 영화연구소 실장 등이 참여했다. 영화제 주관은 인권운동사랑방, 주간 씨네21, 월간 키노 그리고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함께 하기로 했다.
인권영화제를 이화여대에서 진행하기로 한 데에는 그해 여름의 연세대 사건 이후 정부의 탄압으로 제대로 남아 있는 대학 총학생회가 거의 없었고, 대학들이 외부 단체의 행사를 거부하고 있던 사정과 관련이 있었다. 또, 그해 5월에는 이화여대 대동제에 고려대학교 남학생들이 난입해서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당시 이화여대 윤민화 총학생회장이 이화여대생들과 함께 고려대에 가서 항의하면서 사과까지 받아냈다. 고려대 남학생들의 폭력적인 대동제 방해사건을 해결한 그 투지와 인권영화제 조직위원회의 입장이 맞아서 이화여대에서 역사적인 인권영화제 개막을 할 수 있었다.
인권영화제 대박 나다
예상했던 대로 개막일인 11월2일을 앞두고, 서대문구청은 신고된 공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연중지 명령을 내렸다. 문화체육부는 교육부를 통해서 학교 쪽을 압박했다. 학교 당국은 공식적으로 영화제를 불허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공식 불허된 행사라서 경찰이 진입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흔들림 없는 총학생회 덕분에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제는 대박이 났다. 11월2일부터 8일까지 일주일 동안 열린 인권영화제를 찾은 관객이 1만5천명에 달했다. 그중에는 장미희씨 같은 유명 배우도 있었다. 대형 강의실에서 빔프로젝터를 통해서 상영하는 영상 화질이 좋을 리 없었고, 음질도 형편없었다. 곳곳에서 사고도 여러번 있었다. 영상이 나오면 소리가 안 들렸고, 소리는 나오는데 영상은 나오질 않았다. 그럴 때마다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사고를 수습했다. 그런 모든 걸 관객들은 이해해주고 있었다. 시민들은 갈증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제목만 알려져 있던 유명 감독들의 희귀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처음 있는 기회였다. 이런 갈증에 더해져 다른 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한 궁금증도 합쳐져 터진 상황이었다.
“영화 속의 인권, 인권 속의 영화”란 타이틀을 내건 제1회 인권영화제 개막작은 ‘잊지 말자’(Contre L'Oubli)였다. 이 영화는 1991년 국제앰네스티 창립 30돌을 기념해 세계 30개국 인권문제를 유명 감독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한 작품이었다. 인터뷰도 있었고, 뮤직비디오 형식도 담겼다. 독재에 맞서는 세계인의 투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둑맞은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아르헨티나 인권 상황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군부독재에 의해 고문·실종·살해 등 국가폭력이 자행된 ‘더러운 전쟁’ 기간에 실종된 아동들을 찾아 나선 ‘5월 광장 어머니들’의 캠페인과 함께 아이들이 본래의 가족을 찾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외에도 미국, 프랑스, 대만, 쿠바, 칠레 등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한국의 독립 다큐도 세편 상영되었다.
일주일간의 영화제를 마치고는 지방 영화제가 이어서 진행되었다. 인천, 광주, 부산 등등 전국의 거의 모든 광역시도에서 영화제가 이어졌다. 이 영화제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가들이 작품이 든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내려갔다. 작품 복제를 막기 위해서 영화 상영 전에 테이프를 영화제 주최 쪽에 전달하고, 영화 상영 뒤에는 회수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를 믿고 상영권을 준 국외 영화제작자와 감독들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
경찰이 봉쇄한 제2회 인권영화제
전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인권운동사랑방 작은 사무실에 몰려들어서 북적였다. 일은 많아서 영화제 준비 기간에는 거의 매일 밤샘 작업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인권운동사랑방은 활기로 가득 찼다. 인권운동사랑방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인권영화제의 성공에 힘입어서 이후에는 여성영화제, 환경영화제, 독립다큐영상제, 퀴어영화제 등등 많은 독립영화제가 생겨났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영화에 대한 검열 제도는 변화되어갔다. 인권영화제는 검열에 반대하면서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제2회 인권영화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1997년 제2회 인권영화제는 홍익대학교에서 9월27일~10월4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이때 집중적인 관심은 조성봉 감독이 제주 4·3 피해자들을 인터뷰해서 만든 다큐 ‘레드 헌트’를 상영하느냐에 쏠렸다. 이미 대학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한다는 이유로 경찰이 학교로 진입해서 영화 상영을 중단시킨 일이 있었다. 이 영화를 상영하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내걸고 시작된 인권영화제가 이 영화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건 우리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제2회 인권영화제 개막일인 1997년 9월27일, 홍익대학교 정문을 경찰이 막아섰다. 학교는 개막식을 열기로 한 강당의 전원을 차단했다.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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