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되자 온동네가 귀곡성 … 강화도는 '불면의 밤'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2024. 11. 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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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밤 11시 무렵.

인천 강화도의 한 작은 마을에 '귀신 울음소리'가 골목골목 퍼지기 시작했다.

강화도의 한적한 밤이 북한의 대남 방송이 만들어내는 난데없는 소음에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저수지에서 밤낚시를 하던 한 남성은 "매일 저런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까지 짐승 소리를 쓰더니 오늘은 귀곡성으로 바뀌었다"며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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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방송에 고통받는 강화도 가보니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쩌렁
귀신 우는 소리·고함·늑대 울음
음산한 소음, 잠잘 시간에만 틀어
주민들, 불면증·불안감 호소

지난 2일 밤 11시 무렵. 인천 강화도의 한 작은 마을에 '귀신 울음소리'가 골목골목 퍼지기 시작했다. 기괴한 높은 음 아래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낮은 음이 웅얼거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였다. 시간이 지나자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와 웃음소리, 남성의 고함, 짐승 울음소리 등이 섞여 흘렀다. 강화도의 한적한 밤이 북한의 대남 방송이 만들어내는 난데없는 소음에 순식간에 어수선해졌다.

저수지에서 밤낚시를 하던 한 남성은 "매일 저런 소리가 들린다. 얼마 전까지 짐승 소리를 쓰더니 오늘은 귀곡성으로 바뀌었다"며 푸념했다. 군사분계선(MDL)까지 약 1.5㎞, 북한까지 3㎞ 떨어진 이곳 강화군 송해면 숭뢰리에서 북한이 송출하는 잡음은 일상이 됐다.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화도 주민 안 모씨는 대남 방송 소음으로 인해 삶이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초등생 자녀들이 잠을 못 자 건강이 악화하고 있다며 군 관계자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눈물을 흘리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숭뢰리에 수십 년째 거주하고 있는 또 다른 남성은 "밤낮없이 (대남 방송을) 하더니 이제는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 정도까지 한다"며 "딱 잘 시간에 방송하는 걸 보면 악의적"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북한의 대남 방송이 한국의 대북 방송과 달리 주민의 짜증을 유발하는 목적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숭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는 "30일 넘게 (대남)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며 "귀신 웃음소리, 늑대 울음소리, 시끄러운 기차 소리, 무전기 잡음 등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한국의 대북 방송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남북 간 경제 격차를 비교하는 콘텐츠로 구성된다. 정부는 북한이 내부 반발을 우려해 숨기고 있는 러시아 파병 사실도 대북 방송으로 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남 방송보다 대북 방송의 위력과 효과가 더욱 크다고 보고 있지만, 강화도 주민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짧지 않은 기간 소음에 시달린 주민들은 이제 소리에 둔감할 지경이다.

피로도는 계속 누적되고 있지만 남북 관계 개선 외 별다른 해결책도 없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행정적으로든 뭐든 우리 정부가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면서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주민들의 고통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대남 방송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화도로 젊은이들이 '대남 방송 투어'를 오는 풍경이 펼쳐졌다.

강화도에서 펜션을 하는 B씨는 "얼마 전 청년들이 전화로 대남 방송이 들리냐고 물은 뒤 실제로 투숙했다"며 "소리를 잘 녹음할 수 있는 '명당'도 추천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요는 일부에 불과하다.

[김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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