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줄이고 운영자금도 안써…경제 한파 대비나선 기업들

명지예 기자(bright@mk.co.kr) 2024. 11. 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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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조달된 시설자금 7.7조
실제 투자엔 3.4조만 사용돼
초저금리 시기 발행한 회사채
높은 금리 채권으로 돌려막아
기업 이자부담 늘어 전전긍긍
투자 여력 있는 대기업들
해외투자 위해 달러채권 발행

◆ 빚 돌려막는 기업들 ◆

기업들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 시설 투자는 하지 않고 기존의 고금리 부채를 상환하는 데 쏟아붓고 있다. 원자재 구매, 마케팅 활동 등 일상적인 영업 활동에 들어가는 운영자금도 줄였다.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상장사들은 회사채를 약 41조원 발행해 약 31조원을 빚 상환에 썼다. 지난해 발행한 회사채도 70%가 빚 갚는 데 쓰였는데, 올해는 비중이 더 늘어났다.

회사채 발행은 은행 대출과 함께 기업의 대표적인 외부 자금 조달 수단으로 꼽힌다.

회사채 외에도 기업은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주식연계채권(EB, CB, BW), 기업어음(CP)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은 주로 채무 상환, 운영자금 확보, 시설 투자 등을 위해 사용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채무 상환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차환용 회사채 발행 비중이 3년 전 53%에서 75%까지 늘어날 동안 시설 투자용 회사채 발행 비중은 같은 기간 18%에서 7%로 줄어들었다.

운영자금 목적으로 발행한 회사채 비중도 이 기간 27.7%에서 17.6%로 줄었다.

시설 투자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놓고도 절반 이상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장사들은 지난해 시설 투자 목적으로 회사채, 주가연계증권, 유상증자 등을 통해 약 7조7000억원을 조달했다. 하지만 이 중 실제 사용된 자금은 3조4000억원으로, 사용률은 44%에 그쳤다. 지난해 시설 투자용으로 조달한 자금 8조9000억원 중 97%를 사용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유 의원은 "기업들의 미래에 대한 소극적 투자가 성장동력 상실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재무구조 개선도 의미가 있겠지만 빚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피해는 투자자들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회사채 순발행 규모가 급감한 것도 기업들이 기존 부채를 줄여나가는 데 주력한 탓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회사채 순발행 규모는 7365억원에 그쳤는데, 지난해 같은 시기 5조3084억원을 순발행한 것에 비해 대폭 줄어들었다.

빚을 더 늘리지 않고, 있는 빚을 갚는 데 집중했다는 뜻이다. 금리가 하락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회사채 순발행을 늘리지 않는 경향도 한몫했다.

다만 과거 초저금리 시기에 발행한 회사채를 차환하는 경우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KB금융은 지난달 31일 총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고, 이 중 1700억원을 차환에 활용할 계획이다. 2019년, 2020년에 조달한 채무 이자율은 1.7%대지만 차환에 쓰일 이번 회사채 이자율은 3.280~3.304%로 결정됐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레벨이 과거에 비해 높아져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투자 목적의 자금 조달을 하기보다는 돌아오는 만기를 차환하는 수준의 발행이 많았다"며 "경기 불확실성이 커져 기업들이 성장보다는 현상 유지를 우선시하는 경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투자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해외 투자를 위한 KP물(달러 표시 한국 기업 채권) 순발행은 4년 연속 증가세다. 올해 들어서만 188억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연간 실적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이렇게 해외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ct·반도체 칩과 과학법) 등을 시행해 외국 기업의 직접 투자를 장려하고 있는 영향이 가장 크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의 규모와 투자 대상을 확대했다. 2030년까지 약 450억달러(약 62조3000억원)를 투자한다. SK하이닉스도 38억7000만달러(약 5조3000억원)를 투입해 인디애나주에 패키징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운용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 직접 투자를 늘리면서 현지 통화로 자금을 조달하는 추세"라며 "외화 표시 채권인 KP물의 이자 비용은 법인세 계산 시 과세소득에서 차감돼 법인세 부담을 줄이는 데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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