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행운의 겨울

2024. 11. 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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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보다 유달리 찬바람이 매서웠던 1997년 12월의 겨울날이 떠올랐다.

얼마 전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서재 한쪽에서 우연히 발견한 '해고예정통지서'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삶을 돌아보면 오늘이 있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온 티핑포인트가 된 시기는 바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던 유달리 차가웠던 '행운의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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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보다 유달리 찬바람이 매서웠던 1997년 12월의 겨울날이 떠올랐다. 얼마 전 이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 서재 한쪽에서 우연히 발견한 '해고예정통지서' 때문이다. 그해 겨울, 첫째 딸이 태어난 기쁨과 더불어 회사에서의 인정을 바탕으로 인생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만 같은 희망으로 부푼 마음은 해고 통보를 받음과 동시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필자는 현재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회사의 당시 산하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 대상자가 돼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됐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말 그대로 송두리째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통해 얻은 새로운 결심과 깨달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때부터 나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함'이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그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일이 많아서 힘든 건 일할 곳이 없어서 힘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일할 기회를 준다면 너무나 감사하며 즐겁게 생활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여태껏 쌓아온 능력이라는 것이 직장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를 깨달았을 때 무의미하게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어딘가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필자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인지 몇 개월 후 회사는 감봉을 조건으로 다시 한번 일할 기회를 줬다. 같은 직장이지만 과거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으로 직장생활이 시작됐고, 어렵고 힘든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차가웠던 그 겨울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우여곡절을 거쳐 남들보다 훨씬 뒤늦게 시작하게 된 직장생활이지만 그 누구보다 즐겁고 활기차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다.

'마음먹기에 따라 같은 상황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인생이 바뀔 수 있다'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이 말이 필자에게는 큰 울림을 준다. 갓 태어난 딸의 얼굴을 보며 막막하고 미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던 혹독한 경험을 통해 이 문구가 지닌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인 듯하다. 독자들께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유배기간'의 절망감을 딛고, 새로운 도전과 배움의 기회로 삼아 넥스트와 픽사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애플의 CEO로 복귀한 유명한 이야기가 더욱 와닿는 사례일 수 있겠다.

크든 작든 누군가의 성공은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주변의 좋은 인연과 도움, 그리고 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필자 또한 이를 알기에 늘 겸허하려고 노력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베풀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삶을 돌아보면 오늘이 있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온 티핑포인트가 된 시기는 바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던 유달리 차가웠던 '행운의 겨울'이었다.

[황병우 DGB 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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