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커즈와일의 'nearer'

심윤희 기자(allegory@mk.co.kr) 2024. 11. 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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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 초월하는 특이점
2045년→2029년 앞당겨
문명사 바꿀 AI경쟁 치열한데
강건너 불구경만 할건가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대중에게 알린 이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다. 그는 2005년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란 책에서 "2029년 인공지능(AI)의 지능은 인간과 같아지고, 2045년에는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상과학 소설 같은 터무니없는 주장에 다들 반신반의했지만, 그의 AI 관련 예언은 상당 부분 맞아들어 가고 있다. 적중률이 86%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 그가 근 20년 만에 특이점 도래 시기를 앞당겼다. 지난 6월 내놓은 신작 '특이점이 더 가까워졌다(The Singularity is Nearer)'에서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2045년이 아닌 바로 5년 뒤인 2029년에 닥친다고 주장했다. 2045년까지 인간이 AI와 완전히 결합해 '불멸의 사이보그'가 될 거라는 과격한 주장도 내놓았다.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화려한 그의 이력을 볼 때 기술 유토피아를 꿈꾸는 급진적인 엔지니어의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인간의 뇌에 칩을 심는 데 성공한 일론 머스크를 봐도 그렇다. 빅테크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공할 만한 AI 개발 속도전을 보면 특이점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테크업계에서는 지금 AI 지능이 인류와 같아지는 범용인공지능(AGI)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2016년 이세돌과 AI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AI 시대 서막을 열었다면, 2022년 오픈AI의 챗GPT 등장은 AI 열풍에 불을 붙였다. 뒤이은 AGI 전쟁은 3라운드로 볼 수 있다. 구글, 오픈AI, 스타트업 앤스로픽 등은 인간처럼 스스로 사고하는 똑똑한 AI 에이전트(비서) 선점 경쟁에 뛰어든 상황이다. 목표는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자비스'의 현실화다. 주인공의 말리부 저택 관리와 비서 역할뿐 아니라 아이언맨의 전투까지 보조하는 AI 비서다. 인간의 명령 없이도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결정하고 컴퓨터로 취득해 정리까지 하는 비서가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AI 거품론이 일긴 했지만, AI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의 급성장과 올해 AI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휩쓴 것은 AI가 주도하는 문명사적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이점에 대한 기대가 큰 것처럼 공포도 만만찮다. AI에 대한 인간의 통제권 상실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일례로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라벤더'와 '가스펠'이라는 AI를 사용 중이다. 라벤더는 제거 대상 인물을, 가스펠은 폭격 대상 건물을 식별해주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정확성이 90%여서 오류가 생길 경우 무고한 희생을 낳을 수 있다. AI의 대부이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턴 교수는 지난해 "브레이크 없이 과열된 AI 경쟁이 통제 불능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구글을 퇴사했다. 유발 하라리도 "통제할 수 없는 힘을 함부로 불러내면 안 된다"며 AI 위험성을 경고했다.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 논란이 크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AI의 위력과 위협을 알아챈 세계 각국의 대응이다. 가장 앞선 국가는 캐나다. 2017년 국가 AI 전략을 수립하고 인재 양성, 정책·윤리 연구 등을 시작했다. 미국도 '국가 AI 연구자원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최근 AI 기술을 핵무기 같은 국가 전략자산으로 간주해 개발 지원과 위험 통제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 정부는 2027년 'AI 3대 강국'이 되겠다고 비전을 선포했지만, 미래 먹거리인 AI를 위한 후속 조치들은 지리멸렬하다. AI 산업 육성과 안전성 확보의 근거가 되는 AI 기본법조차 없고, 기술 인재 유출에도 속수무책이다. 기업들은 불확실성 속에 각자도생하는 모양새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정쟁으로 날을 지새울 때가 아니다. 다가오는 거대한 AI 빅뱅을 직시해야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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