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풍광’이 천덕꾸러기로…하나둘 뽑히는 야자수

민소영 2024. 11.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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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제주답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눈앞에 펼쳐지는 빼곡한 야자수를 보면 으레 떠올리는 감상이지요.

제주시에만 1천 그루가 넘는 야자수가 심어져, 도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주 동서남북 곳곳에 워싱턴야자수가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남태평양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관광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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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7일 제주공항에 급변풍특보와 강풍 특보가 내려져 강풍에 야자수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와, 제주답다."

제주공항에 도착해 눈앞에 펼쳐지는 빼곡한 야자수를 보면 으레 떠올리는 감상이지요.

이국적인 정취를 흠씬 풍기며 '여행 온 기분' 제대로 들게 해주던 야자수 가로수가 최근 몇 년 새 모습을 감추고 있습니다.

키 큰 야자수가 강한 비바람에 쓰러져 보행자와 차량을 위협하고, 높은 고압선을 건드려 정전 사고도 일으키는 등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탓입니다.

■ '제주 상징' 야자수 가로수 퇴출…남국의 정취에서 '안전 골치'로

제주 도심 풍경을 이국적으로 만드는 데 한몫해온 이 나무의 이름은 '워싱턴야자'.

제주도 향토 수종은 아니지만 '휴양지' 이미지를 선보이기 위해 1982년부터 가로수로 식재됐습니다.

제주시에만 1천 그루가 넘는 야자수가 심어져, 도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난 7월 제주시 한림읍 협재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야자수를 배경으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민소영 기자


제주 동서남북 곳곳에 워싱턴야자수가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남태평양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관광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냈지요.

문제는 이 야자수가 40년 넘게 쑥쑥 잘 자라면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곧게 자란 워싱턴 야자수는 키가 15~27m에 이릅니다. 아파트로 치면 5층에 이르는 높이입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제주를 할퀴고 지나간 2022년 9월 6일 제주시 용담동 한 도로변에 야자수가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제주에선 여름철 태풍과 강풍이 불 때마다 거대한 야자수가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나가 쓰러지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제주도 도심에는 아직 전선 지중화 사업이 이뤄지지 않은 구간이 많은데, 이 일대에 심어진 야자수가 높이 자라면서 고압선과 접촉해 정전 사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잎이나 꽃대가 떨어지며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 "이국적 풍광 사라져서 아쉬워"…"도심 가로수로는 부적합"

이런 사정으로 40년 가까이 제주 지역 가로수 안방마님 자리를 굳건히 지킨 야자수는 결국 2021년부터 하나둘씩 뽑히고 있습니다.

야자수가 뽑혀 나간 자리에는 이팝나무와 먼나무 등 다른 나무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제주를 할퀴고 지나간 2022년 9월 6일 제주시 용담동 한 도로변에서 태풍에 의해 야자수가 뿌리째 뽑혀 쓰러져 있다. 연합뉴스


특히, 워싱턴야자수는 안전사고 우려뿐 아니라 열섬효과 완화 등 기후 조절 능력도 약해, 수종 교체 필요성이 제기돼 왔습니다.

제주시 관계자는 "야자수는 태풍과 강풍 등으로 안전사고는 물론, 매년 고가 사다리차를 동원해 가지치기해야 하는 등 도심 가로수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수종을 교체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주시에 따르면 현재까지 제주시 내 20개 구간에 심긴 야자수 총 1천325그루 중 549그루(41.4%)가 대체됐습니다.

제주시는 내년 탑동 이마트에서 제주항까지 임항로 1.2km 구간에 심어진 워싱턴야자수 100여 그루를 이팝나무 등으로 바꿀 계획입니다. 내년까지 야자수 가로수를 옮겨 심으면, 전체 가로수의 절반가량이 다른 나무로 바뀌는 겁니다.

앞서 제주시는 2022년 노형동과 연동 일대 가로수로 심긴 워싱턴야자 등 370여 그루를 협재해수욕장과 함덕해수욕장 등 해안지대로 옮기고, 대체 수종으로 바꿔 심기도 했습니다.

제17호 태풍 ‘타파’가 제주를 강타한 2019년 9월 22일 오전 제주국제공항에 강풍이 몰아쳐 야자수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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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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