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최윤범이 증명한 ‘상법 개정’ 필요성 [현장에서]

박종오 기자 2024. 11.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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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5천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고려아연 이사회는 오전 9시에 시작해 10시 29분에 끝났다.

이 자리에서 이승호 고려아연 부사장(미등기임원·재무담당)은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 기반을 확대하고 국민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라 보고했다.

이번 유상증자를 승인한 고려아연의 이사회 의사록엔 "출석 이사들은 의안을 신중히 검토한 후 결의했다"고만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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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이 지난달 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지난달 30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5천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한 고려아연 이사회는 오전 9시에 시작해 10시 29분에 끝났다. 다른 안건 보고도 있었으니 이날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 11명이 실제 증자 안건을 논의한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을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승호 고려아연 부사장(미등기임원·재무담당)은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 기반을 확대하고 국민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라 보고했다. 최 회장(이사회 의장)이 증자 승인을 요청하자 이사 11명 중 10명이 찬성했다. 최 회장과 갈등을 빚고 있는 장형진 이사(영풍 고문)는 참석했으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이번 증자의 문제점은 크게 셋이다. 첫째, 일반 주주들의 뒤통수를 쳤다. 최 회장 쪽이 ‘주주 가치 제고’를 내걸고 자사주 204만주를 사들인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이번엔 신주를 대량으로 발행하겠다고 나선 것이어서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으로 유통 주식 수 감소, 주가 상승을 기대했던 주주들은 거꾸로 지분율 희석을 겪게 됐다.

둘째, ‘깜깜이’ 의사 결정이다. 유상증자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14일부터 증자 추진 절차(실사)를 밟아왔다. 자사주 매입이 진행 중인 동안(10월 4∼23일) 겉으론 “향후 회사의 지배구조와 재무구조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고 해놓고, 뒤에선 경영권 방어 목적의 유상증자를 준비했다는 의심엔 근거가 있다.

셋째, ‘말 뒤집기’다. 고려아연이 시중의 유통 주식 물량을 줄이는 자사주 매입을 진행할 땐 “상장 폐지 가능성이 없다”고 해놓고, 정작 유상증자 신고서엔 신주 발행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유통 주식 수 감소로 상장 폐지 위험이 있다”고 써놓은 까닭이다.

이번 유상증자를 승인한 고려아연의 이사회 의사록엔 “출석 이사들은 의안을 신중히 검토한 후 결의했다”고만 쓰여있다. 이는 ‘거수기’ 이사진의 날림 결의 아닌가. 만약 안건이 미리 공유됐더라도 회의에서 어떠한 신중한 검토를 하고 격론이 오갔는지 구체적인 설명 한 줄 없다.

금융 당국까지 칼을 빼 든 이번 사태를 보며 일반 주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재계에선 대주주 경영권 방어를 위한 규제 완화를 촉구하지만, 고려아연 최 회장 사례는 한국의 기업 이사회와 자본시장이 소수의 대주주에게 치우치고 쏠린 운동장이라는 걸 보여주는 본보기다. 우리의 현주소를 제대로 진단한 제도 개편이 필요한 때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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