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귈 수 없는 학교…야만적인 내신 제도 바꿉시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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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인 제 아들은 요즘 매일같이 시험 보기 싫다는 말을 합니다.
최근 공정성 문제로 대입 수시 모집까지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주요 평가 지표로 삼으면서 고등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자기 바로 옆에 있는 학생들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1년에는 내신 성적이 대입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선 고등학교에서 2학년, 3학년 때 내신 시험을 전국에서 동일한 시험 문제로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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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가명) | 고등학생 학부모
고등학교 2학년인 제 아들은 요즘 매일같이 시험 보기 싫다는 말을 합니다. “시험 안 보면 학교는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으면, 학교에서 자퇴하고 싶답니다. 최근 공정성 문제로 대입 수시 모집까지 고등학교 내신 성적을 주요 평가 지표로 삼으면서 고등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자기 바로 옆에 있는 학생들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 아들은 학교에 다니기 싫을 정도로 시험 경쟁 스트레스를 겪고 있습니다.
내신 시험 성적을 대입에 크게 반영하기 시작한 2002년부터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 그때 수시 모집은 내신과 교내외 활동 등을 중심으로 평가했기에 경쟁이 조금 덜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 입학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내신 시험의 영향력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자기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과의 경쟁이 대학 입학의 핵심 경쟁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대입을 위한 경쟁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인데, 내신 경쟁이 뭐가 문제인가’라고 독자님들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1년에는 내신 성적이 대입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고등학교 동창생들 사이에는 “우리 같이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애들을 이기자”라는 연대 의식이 매우 강했습니다. 매일 같이 얼굴을 보고 밥을 같이 먹고, 같이 대화도 하고, 우정도 쌓고 연애도 하는 같은 학교 동창생들은 학생들의 인격 형성에 너무나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놀면서 “세상은 참 신나는 곳이야. 살아볼 만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 믿음으로 지금도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그렇게 인생에 힘이 되는 친구를 사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우정을 쌓을 고등학교 동창생들이 죄다 지신의 경쟁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 제 아들은 저에게 울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내 친구가 며칠 전에 결석해서, 수업 필기 노트를 빌려달라고 하는데, 빌려줄까 말까?” 이 질문에 도대체 답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와의 우정을 생각하면 당연히 필기 노트를 빌려줘야 하지요. 그런데 필기 노트를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그 친구가 나보다 시험을 잘 봐버리면, 나는 그걸 얼마나 후회하겠습니까? 지금 고등학교에서 바로 이런 끔찍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영국의 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다 퇴임한 어떤 교사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영국의 대학 입학 제도를 제가 물어봤습니다. 영국에선 고등학교에서 2학년, 3학년 때 내신 시험을 전국에서 동일한 시험 문제로 본답니다. 그리고 대학별로 다양한 선발 방식이 있긴 하지만, 이런 전국 공통 내신 시험의 등급을 대략적인 ‘자격’ 요건으로 두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에선 한 고등학교 내에서 성적 경쟁을 하는 반면, 영국에선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동일한 시험을 보면서 경쟁합니다. 그러니 영국의 고등학생들은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성적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영국처럼 내신 시험 제도를 전국에서 동일한 시험으로 보는 방식으로 바꿉시다. 그러면 같은 교실에 자기 옆에 앉아 있는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이 끔찍한 상황은 개선할 수 있습니다. 영국과 동일한 방식을 채택하자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같은 학교 학생들끼리 경쟁하도록 만드는 야만적인 내신 제도는 폐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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