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생물다양성 총회서 ‘원주민 전통 지식’ 인정 받았다

김지숙 기자 2024. 11. 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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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원주민 협의체’ 신설 합의… ‘유전 정보 기금’ 마련도
그린피스 “한국, 인제 대암산·정선 가리왕산 훼손 방치”
지난 2일(현지시각) 폐막한 제16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원주민 협의체’를 신설한다는 당사국 합의에 관계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유엔 생물다양성 총회 제공

‘지구 환경 30%를 보호하고 훼손된 자연 30%를 복원하자’는 목표를 중심으로 열린 제16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COP16·생물다양성 총회)가 2일(현지시각) 콜롬비아 칼리에서 폐막했다. 196개 당사국은 이번 총회에서 유엔의 결정을 협의할 ‘원주민 상설 협의체’를 신설하고, 자연 유전 정보에 대한 글로벌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는 기업들이 수익의 일부를 ‘생물다양성 기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에 합의했다.

4일 생물다양성 총회 누리집과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당사국들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원주민·지역사회의 역할 확대와 디지털 염기서열 정보(DSI) 혜택을 공유한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원주민 협의체는 ‘원주민과 지역사회에 관련된 문제’를 전담하는 역할을 하는 보조기구로, 두 명의 공동의장이 선출되는데 한 명은 유엔 당사국이 지명하고, 다른 한 명은 원주민·지역사회 대표가 맡게 될 것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공동 의장 중 한 명은 개발도상국에서 성별 균형을 고려해 선정된다.

이번 총회 의장인 수잔나 무하마드 콜롬비아 환경부 장관은 합의 직후 “이번 결정으로 원주민, 아프리카계 후손, 지역 공동체의 전통 지식이 인정받았다”면서 “생물다양성 총회에서 26년 간의 ‘역사적 부채’가 해결됐다”고 엑스(X)에 밝혔다. 이는 생물다양성 협약에서 원주민과 지역 공동체의 권리, 전통 의식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1998년 ‘나고야 의정서’ 이후 큰 진전을 이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총회는 원주민 협의체 신설, 디지털 염기서열 정보 활용 기업의 기금 출연 등이 합의됐지만 ‘30X30목표’와 관련한 ‘자연 금융’ 마련·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 생물다양성 총회 제공

당시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10차 생물다양성 총회에서도 생물의 유전자원을 활용한 의약품 등으로 수익을 내는 기업이 원산지 국가와 이익을 나누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나고야 의정서’가 채택된 바 있다. 이후 여러 총회에서 유전자원의 정의와 범위, 이익 공유 방식을 논의하는데 머물러왔는데 이번 총회에서 관련한 새로운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 당사국들은 ‘디지털 염기서열 정보’(DSI)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수익의 일부를 기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에 합의했다. ‘디지털 염기서열 정보’는 생물의 발생과 성장, 기능에 필요한 유전적 정보를 담은 국제적 데이터베이스로, 그동안 전 세계 기업과 교육기관이 디지털 형태로 저장된 이 정보를 의약품 개발, 농업·환경 연구 등에 무료로 활용해왔다.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은 기술 혁신 등에 긍정적 혁신을 가져왔지만, 실제 유전자원의 원산지 국가에 대한 이익 공유는 전혀 이뤄지지 않아 ‘해적 행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노르웨이 열대우림재단 토리스 예거 대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의약품이 열대우림에서 생산된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이 정보를 통해 창출한 수익의 일부를 자연 보호를 위해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에이피 통신에 말했다. 당사국들은 유전 정보를 활용하는 기업에 이익 1% 또는 매출 0.1%를 ‘생물다양성 기금’으로 낼 것을 요구하기로 합의했다. 기금은 각 나라에 전달하되 50%는 원주민과 지역사회에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총회는 원주민 협의체 신설, 디지털 염기서열 정보 활용 기업의 기금 출연 등이 합의됐지만 ‘30X30목표’와 관련한 ‘자연 금융’ 마련·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엔 생물다양성 총회 제공

다만 이번 총회에서 다른 시급한 문제에 대해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한 일부 돌파구가 마련됐지만 주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혼란스럽게 총회가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 협상이 폐막 예정일인 1일을 넘겨 이튿날 오전까지 이어졌고, 일부 당사국이 귀국을 위해 자리를 뜨면서 ‘자연 금융’의 조성 목표와 운용 방식 등에 결국 합의하지 못한 채 회의가 중단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내년 타이 방콕에서 열리는 임시회의에서 협상이 이어질 예정인데 회의 개최 방식이나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4일 한국 정부가 2022년 생물다양성 총회에서 채택한 ‘30X30 목표’가 정하는 재정 목표는 물론, 자연 보전 목표도 미달인 상황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그린피스가 시민단체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과 함께 한국의 산림보호구역 실태를 살펴본 결과, 대한민국 제1호 람사르 습지인 강원 인제의 대암산은 천연보호구역임에도 2018년말 삼림 벌채가 시작돼 축구 경기장 약 87.5개(약 70㏊) 면적이 훼손됐고, 정선의 가리왕산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장 건설 이후 6년째 복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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