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 이어 레바논서도 병원 공격···“한 달간 구급대원 111명 사망”
이스라엘군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한 달 넘게 레바논 전역에서 공습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제법상 보호되는 병원들도 공격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바논 당국에 따르면 지난 9월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전역에 동시다발적인 공습을 시작한 뒤로 약 한 달간 병원 34곳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구급차에 대한 공격이 심각해, 이 기간 구급차 107대가 공격을 받아 응급구조사(EMT) 11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시 중이라도 병원과 의료진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상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피라스 아비아드 레바논 보건부 장관은 CNN에 “레바논은 여러 차례 전쟁을 겪어왔지만 의료 부문이 이렇게 심하게 공격 받은 적은 없었다”면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와 마찬가지로 레바논에서도 의도적으로 병원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도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레바논 의료 종사자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군은 최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에 있는 알사헬 병원 지하를 ‘헤즈볼라 자금 보관소’로 지목하고 주변을 폭격하는 등 병원 공격의 정당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주요 병원을 ‘하마스 지휘본부’라고 주장하며 1년 넘게 반복적으로 공격해온 것과 판박이 논리다. 특히 레바논에서 구급차 및 구급대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무기를 운반하는 데 구급차를 사용했다고 거듭 주장해 왔으나, 이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병원 내부에 아예 지상군을 투입시켜 의료진을 체포하는 등 대대적인 작전을 벌였던 가자지구와 달리, 레바논에선 현재까지 병원에 대한 직접 공격보다 주변을 겨냥한 폭격이 주로 이뤄지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된 전체 병원 가운데 20%가 공습 피해를 입었으며, 대체로 병원 주변이 공습을 받았다.
그러나 지척에서 벌어진 공습으로 병원들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CNN이 지난 9월23일부터 한 달간 벌어진 공습 240건을 분석한 결과, 최소 24개 병원이 이스라엘군이 대피령 발동 기준으로 삼는 ‘폭격 지점 500m 이내’에 위치해 있었고 이 가운데 19개 병원은 폭격 지점 340m 이내에 있었다. 이는 미국산 GBU-39 등 소구경 폭탄이 주변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이른바 ‘킬 존(Kill zone)’이라고 불리는 구간이다. ‘킬 존’에 있었던 19개 병원 가운데 16개 병원이 폭탄 파편 등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이 기간 벌어진 공습 1000여건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대피령을 발동하거나 위성사진 등으로 확인된 공습만을 대상으로 한 분석한 결과로,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CNN은 전했다.
당국에 따르면 전쟁 발발 후 병원 주변 폭격으로 4개 병원 경내에서 8명이 사망했고, 8개 병원은 아예 문을 닫았다. 지난달 초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경내에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은 알자흐라 대학병원에선 병원 건물에서 불과 30m 떨어진 지점에 폭탄이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 신생아 병동도 폭탄 파편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전직 미군 폭발물 전문가인 트레버 볼은 CNN에 “직접적인 공습 표적이 되지 않더라도 폭격으로 인한 파편은 수백m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비아드 장관은 “많은 공격이 병원 지척에서 일어나면서 많은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선 병원을 겨냥한 공격이 더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3일 가자 북부 카말아드완 병원에 아예 탱크 포격을 가해 입원 중이던 어린이 한 명이 중상을 입었다. 가자지구 북부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이 병원은 최근 이스라엘군의 반복적인 공격을 받아 왔다.
올해 초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 나세르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한 뒤 현재 레바논에서 일하고 있는 미국인 의사 타에르 아마드 박사는 “국제인도법을 완전히 무시한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지난 13개월간 가자지구에서 목격했고, 이제 레바논에서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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