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 "유난하고 소중했"던 '청설'의 모든 순간들 [인터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2024. 11. 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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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홍경 / 사진=매니지먼트mmm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 주고받는 대화에서 때때로 타인의 됨됨이를 느낀다. 말을 건넨 이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경청에서 진중함을, 물음에 답하기 전 "네, 맞아요"라며 공감하고 시작하는 태도에서 배려를,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 모습에서 업에 대한 열중을 드러낸, 배우 홍경에게서 올곧은 됨됨이를 느꼈다. 빛날 경을 쓰는 그의 이름처럼 홍경은 태도로 자신을 빛낼 줄 아는 이였다. 

홍경은 만난 건 영화 '청설'(제작 무비락, 감독 조선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6일 개봉하는 '청설'은 홍경이 처음으로 첫 번째 타이틀롤을 맡은 영화다. 홍경은 주연의 책임감을 오롯이 껴안은 듯, 영화에 관해서라면 한치의 주저나 막힘없이 이야기를 술술 털어놨다. "제게 정말 각별한 작품"이라고 말할 만큼 '청설'에 큰 애정을 드러낸 그는 자신의 입을 통해 "유난하고 소중했던" 영화의 현장 속으로 안내했다.   

"이 작품은 제게 정말 각별해요. 판타지나 장르물이 많아진 상황에서 이런 장르 영화로 극장에 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 있어요.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서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더 많이 닿았으면 하는 이유가 이를 계기로 20대 배우들이 발을 디딜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지길 바라서이기도 해요. '청설'이 그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20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그 세대뿐이잖아요. 그 가능성이 저희의 퍼포먼스로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영화에 투자해 주신 분들도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었을지 알아서 더 각별해요(웃음)."

홍경 / 사진=매니지먼트mmm

'청설'은 홍경의 말처럼 20대 특유의 맑고 청량한 분위기가 실린 청춘 로맨스물이다.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용준(홍경)과 진심을 알아가는 여름(노윤서), 두 사람을 응원하는 동생 가을(김민주)의 청량하고 설레는 순간을 그린다.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원작은 국내에서 2010년 극장 개봉해 수많은 관객에게 인생 로맨스로 손꼽히며 첫사랑 영화의 바이블로 여겨져 왔다.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것에 긍정적이지는 않았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번 만들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에 흥미가 덜하거든요. 그럼에도 '청설'에 매료됐던 건 순수함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이 시기에만 존재할 수 있는 순수함 같은 게 깊게 뿌리 박힌 작품이라고 느꼈어요. 이런 순수함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세상이 점점 빨라지고 금방 휘발되는 세상인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잖아요. 이 영화가 그런 작용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시대가 빨라져도 마음을 다하고 시간을 들여야 하는 사랑의 과정들이요."

극 중 용준과 여름은 서로를 청각장애인이라 생각해 수어로 대화하며 가까워진다. 대학생 시절 우연한 계기로 수어를 익힌 용준은 여름에게 다가가기 위해 수어로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하고, 여름은 그런 용준의 순수한 직진 모드에 마음을 연다. 손끝으로 설렘을 말하고 가슴으로 사랑을 느끼는, 청량한 설렘의 순간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특히 첫사랑의 순수함을 담은 만큼 매 화면에서 전달되는 에너지가 싱그럽다. 

"극 중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잘생기거나 예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빈틈이 많은 작품이길 바랐어요. 화장기 없는 있는 그대로의 얼굴에, 바람 불면 머리카락도 그냥 날리면서요. 그래서 저의 본연의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고 여러 차례 감독님께 이야기 했어요. 그런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을 관객도 알아봐 주실 거로 생각했어요."

홍경 / 사진=매니지먼트mmm

홍경이 극 중 연기하는 용준은 요즘 청년들의 실제적인 고민이 담긴 인물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도무지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는 스물여섯 살의 보통의 청춘이다. 전공을 살리기가 애매한 철학과를 나온 용준이 이력서를 수십장 써도 번번이 낙방하는 모습은 현실과도 지극히 맞닿아있다.

"저도 지금 그렇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용준도 그런 시기를 지나 답답함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 친구가 그렇다고 마냥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많이 공감했죠. 실제의 저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늘 있어요. 용준이처럼 방황한 시기가 있었죠. 꿈과 현실이 달랐던 순간도 존재했고요. 사실 지금도 두려워요. 여전히 '내 마음을 온전히 다음 작품에 쏟을 수 있을까?' 밤새워 고민하고 그래요(웃음)."

반면에 용준은 사랑 앞에서는 용감하다. 여름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그 마음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표현하며 성큼성큼 다가선다.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용준이 마냥 느슨해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랑 앞에서는 용기 있고, 그것으로 자아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모습은 용준이라는 인물을 어여뻐 보이도록 만든다.     

"용준을 보면서 부끄러웠던 순간이 많았어요. 용준은 용감하게 마음을 마주하잖아요. 그걸 상대에게 온전히 드러내고 다가가려고도 하고요. 저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순간이 많거든요. 작아지고 움츠러들었던 적이 많았는데 용준을 통해 용기와 사랑을 배웠어요. 온전히 마음을 마주하는 게 사랑이 아닐지 생각하게 됐죠. 부끄럽게도 실제의 저는 그러지 못하거든요."

홍경 / 사진=매니지먼트mmm

홍경은 '청설' 서사에 가장 극적인 재미를 만들어주는 공신으로 자신이 아닌 노윤서와 김민주를 꼽았다. 특히 두 배우의 극 중 서사뿐만 아니라 연기에 대한 칭찬도 정연하게 늘어놓으며 신뢰를 드러냈다. 

"이 영화가 저한테는 극적이고 가슴 아픈 갈등 구조로 다가왔던 건 여름과 가을의 서사였어요. 여름과 가을이 일련의 사고를 겪으며 덮어놨던 갈등이 터지고,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잖아요. 그 장면이 정말 극적으로 다가왔어요. 극적 재미를 살린 건 이를 연기한 두 배우의 공이 컸죠. (노)윤서는 누구나 아시다시피 슈퍼 커리어를 쌓고 있잖아요. 시작부터 출중하게 멋진 걸음을 밟아가고 있는 걸 봤고, 촬영할 때도 영민함을 느꼈어요. 많이 배웠어요. 주연배우로서 현장에 동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걸 잘해요. (김)민주는 정말 깊어요. '청설'의 굴곡은 (김)민주가 만든다고 생각해요. 갈등이 저리면서 아리고, 연기가 유연했어요. 상대가 뭘 던지더라도 다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더라고요." 

'청설'이 순수함으로 빛나는 장면들은 바로 홍경의 얼굴에서 탄생한다. 그것은 고집 있게 늘 작품 안에 진심을 담으려 노력하는 그의 진심이, 그 진심이 실제처럼 발현할 수 있도록 카메라 밖에서도 늘 사투했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제가 하는 건 진짜 단순해요. 온 마음을 다하는 거요. 느끼는 걸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해요.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역할이 지금 느끼는 게 뭔지에만 집중해요. 인물이 실제라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니까. 머리로 연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청설'의 작업이 소중하고 유난했던 건 더 솔직했기 때문이었어요. 제 전면이 많이 담기기 때문에 얼굴에서 거짓이 있으면 안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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