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반복되는 탄핵의 역사
"사헌부(司憲府),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헤아려 논술하며 풍속을 교정하고 (관리에 대한) 규찰과 탄핵의 임무를 맡았다. 국초에 사헌대(司憲臺)라 칭했다가 성종 14년(995년)에 어사대(御史臺)로 고쳤으며, (관원으로) 대부(大夫)·중승(中丞)·시어사(侍御史)·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감찰어사(監察御史)를 두었다." (고려사 지·백관)
'고려사'에 나온 사헌부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관은 관료를 감찰해 위법행위를 저지를 때 탄핵을 하는 게 주요 임무다. 995년이라는 숫자에서 알 수 있듯이 탄핵의 역사는 유구하다. 전근대 시대부터 지금까지 무려 1000여년이나 이어오고 있다.
"정몽주는 태조의 위엄과 덕망이 날로 성해 조정과 민간이 진심으로 붙좇음을 꺼려했다…(중략)…대간을 통해 태조의 신임을 받는 삼사 좌사 조준·전 정당 문학 정도전·전 밀직 부사 남은·전 판서 윤소종·전 판사 남재·청주 목사 조박을 탄핵하니, 공양왕이 그 글을 도당에 내렸다."
탄핵의 성격은 상황마다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려말 충신으로 알려진 정몽주가 태조 이성계의 측근세력을 탄핵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법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례가 아니다. 세력이 강대해지는 것을 견제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이다.
헌법을 위반한 사유도 있다. 1925년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의 이승만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제 42호에는 탄핵 이유를 자세히 명기하고 있다. 외교를 구실로 한 직무지 이탈, 국고 수입 방해(하와이 교민들이 모은 독립자금 지원 중지 등), 헌법기관인 임시의정원 부인, 국정 방해, 국헌 부인 등이 그것이다. 이를 근거로 임시의정원 심판위원회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임시헌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다만 배경에는 임시정부 소장파와 국제연맹 위임통치 청원 문제를 놓고 벌인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탄핵의 역설'도 나타났다. 당시 물러났던 이승만이 1948년 국회 선거로 초대 대통령에 올랐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발언이 빌미가 돼 탄핵을 당했다. 문제의 발언은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야당인 열린우리당의 편을 든 발언은 중앙선거위원회의 위법 판정을 받았다. 탄핵안은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가결됐다. 의석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야당인 한나라당의 주도에서였다.
당시 야당은 오판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여당 지지를 호소한 행위는 국민들에게 크게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다. 여당 소속 대통령이 자신이 몸 담았던 정당이 총선 승리를 원하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지극히 당연하고 예측 가능한 사실이었다. 국민들은 탄핵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결론은 총선 패배와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매듭지어졌다.
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민 여론에 의해 파면을 당했다. 선진국 국가원수 중 최초였다. 탄핵의 시발점은 '국정농단'이었다. 최서원(당시 최순실)에게 연설문을 미리 보여주고 비선에게 중요한 의사결정과 국정운영, 인사문제에 광범위하게 개입시킨 게 드러나면서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선출자에 대한 주권자의 분노와 징계가 구체화 됐다. 정치권마저 등을 돌렸다. 234 대 56.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국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손석희 전 앵커는 이를 "시민들이 만들어낸 숫자"라고 평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을 인용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서도 탄핵의 목소리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을 비롯한 각종 논란이 정국의 블랙홀이 됐고, 급기야 윤 대통령의 개입 정황이 뚜렷이 보이는 통화 녹취까지 생생한 목소리로 공개돼서다. 9월 중순 경부터 발화한 명태균 '사태'와 강혜경의 '폭로'는 정치권을 저열한 진위 공방과 난장의 도가니로 밀어넣고 있다.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신뢰는 점점 떨어져 지지율은 20% 미만을 찍고 있다. 시민들은 민주당이 거리에서 주도하는 집회인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 행동의 날'에 서서히 몰려들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을 향한 퇴진 발언도 심심찮게 나온다. 당장 탄핵을 공식화할 '헌법과 법률 위반'만 나온다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휘말릴 수 있다. 이제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태세전환'이다. 대통령 자신의 분명한 해명과 김 여사에 대한 특검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데자뷔가 재연될 수 있다. 정치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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