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과 딴판...총리대독 시정연설에 野 "국회 무시" 규탄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하자 야당에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고, 여권에서도 일부 비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참석해 야당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정치권에 훈풍이 불었던 1년 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대신 참석해 시정연설을 했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하는 연설로,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 대통령이 매년 시정연설에 나서는 관행이 만들어진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부터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 불참하고 총리가 대신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것은 이명박 정부 이후 11년 만이다.
야권에선 오전부터 내내 비판이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정연설은) 서비스가 아니라 삼권분립의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해야 할 책임"이라며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을 저버렸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렸던 민주당의 대규모 장외 집회를 거론하며 "구름처럼 몰려든 국민들의 분노가 보여졌다"며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이라는 민심의 엄중한 질책과 경고라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를 전면 전환하고 소통과 통합, 쇄신 행보에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민주화 이후 윤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국회 개원식에도 오지 않았다. 국민 대표자를 만날 용기조차 없는 쫄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당은 시정연설을 전후해 국회에서 피켓 시위도 벌였다. 의원들은 '공천개입 통화 대통령이 해명하라' '윤석열 정권 김건희를 특검하라' 등 내용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국회 연속불참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한다" "국회 무시 국민 무시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한다" "국정농단 핵심 당사자 김건희를 특검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한 총리 연설문 대독에 앞서 유감을 표했다. 우 의장은 "대통령의 시정연설 거부는 국민에 대한 권리 침해다.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며 "대통령은 (지난 9월 열렸던) 22대 국회 개원식에도 불참했는데, 이렇게 계속 국회를 경원시해서는 안 된다. 국회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국정운영의 책임을 다할 수 없는 현실을 무겁게 직시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총리가 시정연설을 하는 중에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만 한 총리가 정부의 성과로 '고용률 역대 최고·실업률 역대 최저'를 거론하거나,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 예산을 증액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야당 일부 의원들이 "상황 파악을 하고 말하시라" "그만하고 내려오세요"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22년에는 야당의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시정연설에 나섰다. 지난해엔 연설 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사전 환담을 하고, 연설 도중엔 여당 대표에 앞서 야당 대표들을 먼저 호명하는 등 협치 시그널을 연속적으로 보내 주목받기도 했다. 연설 이후엔 여야 원내대표·국회 상임위원장단과 간담회도 가졌다.
국민의힘에서도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4일 SNS(소셜서비스)에 "최근의 각종 논란이 불편하고 혹여 본회의장 내 야당의 조롱이나 야유가 걱정되더라도 새해 나라살림 계획을 밝히는 시정연설에 당당하게 참여하셨어야 한다"며 "국회를 패싱하는 이 모습이 대다수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냉철하게 판단했어야만 한다"고 썼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에 대해 "아쉽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한 대표는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 여론이 더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이 직접 나와야 한다는 의견을 대통령실에 전달한 바 있다.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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