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에 가장 적극적”인 금융주, 코스피 주도할까
주주환원 기대감 상승…KRX 은행 지수도 오름세
(시사저널=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금융사들이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공표하는 '밸류업(Value up·가치 제고) 공시 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주가 올해 남은 기간 국내 증시에서 주도 업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업 가치 제고 이행 기대감을 높이는 호실적이 발표된 데다, 배당주가 조명받는 연말 시즌에 돌입했다는 점 등에서 투자 수요가 몰릴 수 있는 환경은 갖춰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 정책을 꺼내 들었다. 유인책을 통해 저평가된 상장사의 주가 부양 의지를 자극하고 그동안 인색했던 상장사의 주주환원을 독려해 국내 증시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계획이었다. 앞서 일본이 유사한 정책으로 증시 부양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시장 기대도 컸다.
금융사 밸류업 공시, 전 업종 중 최대 비중
밸류업 정책의 핵심은 상장사의 밸류업 공시다. 밸류업 공시는 상장사가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구체적인 방안들을 내놓고 이행하겠다는 약속을 밝히는 과정으로, 지난 5월말부터 시행됐다. 10월30일 기준 밸류업 관련 공시는 총 67건이었다.
밸류업 공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금융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다. 구체적인 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밝힌 27개 밸류업 공시 중에서 7개(우리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JB금융지주·KB금융지주·DGB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메리츠금융지주)가 금융사들이 낸 공시였다. 이는 전 업종 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이다. 여기에 향후 계획을 내겠다고 밝힌 금융사도 BNK금융지주, 카카오뱅크, 기업은행 등 세 곳이다.
특히 4대 금융지주라 불리는 KB·신한·하나·우리금융지주 모두 밸류업 정책을 내놨다. 국내 대표 상장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밸류업 공시를 아직 올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두드러진 참여도다. 그만큼 금융권이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애초부터 금융권의 밸류업 정책 참여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는 했다. 금융주 대부분이 PBR(주가순자산비율) 1배를 밑도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PBR이 1배를 밑돈다는 것은 시가총액이 기업의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밸류업 정책이 시행되기 전인 올해 초 금융주의 PBR 평균은 0.5배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금융주의 밸류업 정책 참여가 돋보이면서 주가도 반응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으로 구성된 'KRX 은행' 지수는 지난 10월 한 달 동안 5% 넘게 상승했다. 이는 한국거래소가 산출하는 29개 KRX 지수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이 기간에 코스피가 -0.15% 하락한 것과도 대조된다.
KRX 은행 지수의 오름세는 밸류업 공시 효과로 풀이된다. 금융사들의 밸류업 방안에 따른 주주환원 및 주가 상승 기대감에 매수세가 몰렸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KB금융지주가 꼽힌다. KB금융지주는 10월24일 '보통주자본비율'(CET1) 13%를 초과하면 잉여자본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내용 등의 기업 가치 제고책을 꺼내 들었다. 이는 시장 예상보다 강한 환원책으로 평가되며 이날 장 중 11% 넘게 상승하기도 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당시 KB금융지주 분석 보고서를 통해 "CET1 비율이 워낙 높아 13% 상회분을 모두 환원에 소진하면 다소 파격적인 금액"이라며 "국내 최고 금융지주 위상에 걸맞은 훌륭한 환원책이자 연말 밸류업 지수 추가 편입도 기대된다"고 밝혔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26년 말 예상 CET1 비율은 13.8%다. 이에 따른 환원 가능 재원은 2조8600억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 역시 보고서에서 "KB금융의 밸류업 공시는 투자자들의 은행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신뢰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계기로 작용했다"며 "은행들의 경상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최소 8% 이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은행의 총주주환원율이 매년 상승해 2027년 50%를 달성할 수 있다면, 국내 은행주의 만성적인 할인 요인인 규제 리스크를 감안하더라도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낙관론 속 "장밋빛 전망은 경계해야" 지적도
금융주의 주가가 밸류업에 반응하면서 장기적인 상승 흐름으로 이어질지 이목이 쏠린다. 우선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좋은 실적은 밸류업 이행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올해 3분기의 경우 KB금융지주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8% 증가한 1조614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JB금융지주는 193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4% 증가한 것이다.
배당주가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연말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도 금융주에는 호재다. 통상적으로 증시가 4분기에 접어들면 배당주가 강세를 보여왔다. 배당기준일이 연말에 몰려 있어 배당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을 미리 사들여 내년에 배당을 받거나 배당락 전 시세차익을 남기려는 투자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밸류업 ETF 출시도 금융주엔 긍정적인 이슈로 분류된다. 한국거래소는 9월30일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고 현재 개선 작업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발맞춰 자산운용사들은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연내 출시할 예정인데, 이는 밸류업에 적극적인 금융주 수급이 개선되는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자산운용 업계에 따르면 밸류업 ETF의 순자산은 1조원 안팎으로 설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에선 금융주의 장밋빛 전망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투자 업계 전문가는 "과거 금융주는 배당에 제동을 거는 정부 탓에 투자심리가 위축됐던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주주환원을 장려하는 정부 주도의 밸류업 정책으로 이 같은 리스크는 줄어들었다"면서도 "주가가 계속 오르면 시가 배당률이 하락해 다른 선택 배당주 대비 매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 글로벌 금리 인하 국면 속에서 배당주보다는 성장주 위주의 장세가 펼쳐질 수 있다는 점 등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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