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일하며, 애들을 먹여 살리려 했던…1970~90년대 ‘여성들의 노동 서사’ [플랫]
우물가에 여성들이 모인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인다. 엄마가 일터로 나가 집을 비운 사이, 아이들은 우물가로 모인다. 그러면 또 다른 여성들이 우물가로 찾아와 아이들을 돌본다. 그렇게 우물은 마을을 살린다. 지난 10월 3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열 개의 우물>은 우물가의 여성들, 우물 같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렇게만 말하면 한 편의 동화 같지만, 이 다큐는 1970~1990년대 인천 만석동, 화수동, 십정동 등 빈민촌에서 실제 사람을, 마을을 살려낸 여성들의 서사를 켜켜이 엮어낸다.
과거 만석동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움막을 짓고 살기 시작해 형성된 판자촌이었고, 십정동은 서울 도심에서 내몰린 철거민과 농촌을 떠나온 이농민들이 모여든 철거민촌이었다. <열 개의 우물>은 이 가난한 마을에서 생계를 꾸리고 아이를 길러낸 여성들, 그리고 그들 일상으로 들어가 이른바 반빈곤운동, 탁아운동, 여성운동을 했던 여성들을 조명한다. 그런가 하면 만석동은 1970년대 유신정권 노동자들을 탄압하던 긴급조치 시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만석동 동일방직에서 1972년 한국 최초로 여성이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선출됐다. 이어 1975년에도 여성 지부장이 선출되자, 회사와 반대파 조합원들의 노골적인 활동 방해와 괴롭힘이 계속된다. 이에 항의한 여성 노동자 124명은 1978년 해고된다. 이 다큐에 등장하는 안순애는 그중 한 명이다.
다만 영화는 과거를 비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현재를 추적한다. 각자가 다른 공간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삶이 계속되고 있음’은 그들에게 그 자체로 노동이자, 사회운동이 됐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 개의 우물>을 제작·연출한 김미례 감독을 만났다. 그는 이 다큐가 “아직 언어화하지 못한 여성들의 어떤 일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곳에서 ‘사회적 돌봄’의 불씨를 키웠다
김 감독은 전작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2020)과 관련해 인천 부평 지역을 취재하면서 1980년대 십정동에 아이들을 돌보는 여성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십정동 해님놀이방 선생님이었던 김현숙을 알게 된 후, 김 감독은 그가 강화도에서 운영하는 책방 ‘국자와주걱’을 찾아갔다. 2021년 이른 봄이었다. 그로부터 약 2년간 다큐를 찍었다. 김현숙은 빈민 지역에서 아이들을 돌봤던 일에 관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꿈을 꾸었다”고, 그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로 기억했다. 김 감독은 “김현숙 선생님은 (남에게 보일 것은 아니라고) 중요하지 않다고 했지만, 저한테는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라고 했다.
김 감독은 20여 년간 ‘노동’, ‘여성’, ‘여성 노동’이란 주제어를 들고 현장과 사람을 기록해왔다. 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노가다>(2005)는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외박>(2009)은 2007년 대형마트 홈에버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을, <산다>(2013)는 명예퇴직 요구에 맞선 KT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여성·노동 문제와 연결해봤을 때, 여성이 일한다고 하면 항상 아이의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때는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던 시기라 가난한 집에서 돈벌이해야 했던 여성뿐만 아니라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여성들에게도 육아·돌봄 문제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이분들을 한번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열 개의 우물>은 그동안 사회가 주목하지 않은 여성의 자리를 비춘다. 정부의 무상보육이 시작되기 전인 1980~1990년대에 일터로 나가려는 여성은 아이들을 맡길 공간이 간절했다. 다큐는 김현숙뿐만 아니라 만석동 큰물공부방 선생님이었던 홍미영, 화수동 민들레공부방 선생님이었던 유효순을 따라간다. 홍미영은 대학 동아리 활동으로 만석동에서 반빈곤운동을 시작해 이후엔 십정동 주민이 됐다. 그는 해님놀이방에 아이를 보내며 자모회 활동을 했다. 그는 국회의원·구청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유효순은 유아교육을 전공한 후 당시 민들레선교원에서 시작한 교육운동을 민들레공부방 설립으로 이어갔다. 여전히 아이돌봄 교사로 활동한다. 한국여성민우회 문화부 활동을 하다 십정동 해님놀이방과 인연을 맺은 신소영은 현재 해님지역아동센터 대표로 있다.
이 공부방들은 아이들만 돌본 것이 아니라 엄마들을 모이게 했다. 엄마들은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고 소식지에 자기 글을 써냈다. 자모회는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공부방을 살리기 위해 나섰고, 동네의 문제들을 해결했다. 신소영은 “해님놀이방에서 어떻게 아이를 잘 키울지, 어떻게 살맛 나는 동네로 만들지 공부하고 잔치를 하고, 같이한 경험과 가치가 있다. (지금 아파트단지가 들어서서) 동네는 헐렸어도 그렇게 자라왔던 엄마들, 할머니들, 아이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어 자기 나름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탁아소연합회 사무국장을 지낸 최선희는 “그때 전국적으로 100개 정도의 소위 빈민 지역, 공단 지역에서 탁아소가 만들어졌는데 그때 우리가 이 운동을 탁아운동이라고 했다”며 “탁아운동이란 육아의 문제를 사회화시켜내는 운동이었다”고 전한다.
김 감독은 “유효순·김현숙 선생님은 당시 공부방에서 엄마와 선생님이 아이를 함께 키워나간다는 철학이 있었고, 학부모 모임을 만들고, 그분들이 움직이게 하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이라며 “‘돌봄’이라고 해서 아이들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돌봄이라는 말 안에는 다양한 결들을 포함한다. 여성과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그때 그런 활동들이 (여성이 노동할 때 필요한 사회시스템과 같은) 작은 불씨를 만들어냈던 것을 비추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는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일하는, 애들을 먹여 살리려고 해야 했던 여성들의 노동이 굉장히 많이 있었던 것이죠. 공장 일이든, 장사든, 부업이든, 농사든. 저는 그것도 노동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 개의 우물>에는 1970~1990년대 ‘일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80년대 해님놀이방에서 낸 소식지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날마다 시장에 가십니다/ 오늘도 새벽에 나가셨읍니다/ 우리 어머니는 쇳덩어리입니다”(해님놀이방 아동의 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이 일 저 일을 찾아 헤매야만 했을까. 그러나, 난 슬프다고 이런 내 삶이 뼈아프다고 가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인생을 개척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해님놀이방 엄마의 글)
그때 여성들에게 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김 감독은 “제가 학자나 연구자가 아니어서 언어화시키지 못한 부분”이라며 “여성이 생계를 위해서 일하러 나가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해석이다. 누구나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한다. 여성의 사회활동이라는 측면에서도 더 이야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동이라는 것이 법·제도 안에서 근로계약 관계를 맺는 형태, 조금 더 힘든 위치에 있지만 비정규직이라고 표현하는 노동, 그렇게 이슈화가 돼서 불리는 노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일하는, 애들을 먹여 살리려고 해야 했던 여성들의 노동이 굉장히 많이 있었던 것이죠. 공장 일이든, 장사든, 부업이든, 농사든. 저는 그것도 노동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일방직에서 8년간 투쟁한 안순애는 충북 음성으로 이주해 농민이 됐다. 안순애는 ‘WTO 쌀 수입 반대’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르고 집회에 나갔고, 여성 처음으로 지역 농협 이사로도 나섰다. 마을 이장을 두 번 지내면서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려 애썼다. 본인 말처럼 “누가 상 안 주나” 싶은데, 그는 스스로 대단한 철학이나 투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처한 사회적 위치가, 꼬라지가 이래서” 살다 보니 뭔가 해왔더라고 말한다. 안순애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이웃을 따라나섰다가 진격대 앞에서 눈을 감고 꽹과리를 쳤던 청년의 이야기를 꺼낸다. 자신 또한 “모르면서 무서워서” 그렇게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김 감독은 안순애와 처음 통화했을 때 “말씀마다 시간의 묵직함, 저력이 느껴졌다”고 했다. 안순애의 이야기는 자꾸 ‘동일방직’으로 돌아갔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안순애의 기억에 “사진처럼 박힌” 장면,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 간부를 체포하려던 경찰에 맞서 ‘나체시위’를 벌였던 이야기는 다큐에서 사진 자료로 등장한다. ‘과거의 사건’이지만 그것이 안순애에게는 “해결하지 못해 가슴에 남은 사건”(김미례 감독)이다.
“안순애 선생님이 ‘한국사회는 철저하게 계급사회야’라고 말씀을 했어요. 노동현장에 왔던 학생운동하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 살길 찾아갔지만, 안순애 선생님은 자신 같은 사람은 불러주는 곳도 없고 무엇이라도 하려면 학벌이 중요해서 할 수 있는 것, 농사를 최선을 다해 지으며 살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또 똑같이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동일방직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이후의 삶에 있어서 사회를 좀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면서 자신은 지역에서 뭔가를 할 때 그것이 기반이 돼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 두 가지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성의 노동, 사회활동에 관해 이야기하던 다큐는 후반부 다소 결이 달라져 여성들의 지금 삶을 추적하는 것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투쟁의 서사를 강조한 김 감독의 전작들과도 조금 다르다.
“제가 나이가 들었단 얘기겠죠(웃음). 노년에 이르러 이제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잖아요. 특히나 젊었을 때 열심히 사회적 활동, 사회구성원으로서 뭔가를 해왔던 분들이잖아요. 이분들이 자기 삶을 어떻게 말씀하실까 궁금했어요. 제각각의 자리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되게 당당하다’고 느꼈어요. ‘자랑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떳떳하지 않은 건 아니다’ 이런 말씀들을 해요. 그걸 기반 삼아서 이후로도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열 개의 우물>에는 벚꽃이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장면이 나온다. 김 감독은 “힘들게 살아온 여성분들이 살다가 어느 날 봄이 되면 ‘벚꽃이 피었더라,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는 이런 말씀을 참 많이 한다”며 “벚꽃이 만발한 순간에 자기연민뿐만 아니라 행복감과 슬픔 등 감성이 풍부해지는 순간, 그런 순간을 누리고 볼 줄 아는 여성들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1970~1990년대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삶을 일궜던 동시대 여성들이 이 다큐를 보길 권한다. 이 작품이 “그들 각자의 이야기로 다가가서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열 개의 우물>은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제2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25회 제주여성영화제, 제15회 광주여성영화제 등에서 초청 상영됐다. 서울(인디스페이스, 아트하우스모모, CGV 용산아이파크몰·압구정·명동역 등), 인천(CGV인천, 미림극장, 영화공간주안, 강화작은영화관), 대전(소소아트시네마·씨네인디U·대전아트시네마), 대구(오오극장), 안동(안동중앙시네마), 부산(부산영화의전당·CGV서면), 광주(광주독립영화관) 등 지역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 상영시간 82분. 12세 이상 관람가.
▼ 김향미 기자 sokhm@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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