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길의 이슈잇슈] "평생 세입자로 살라고요?"…갈지자 정책에 분통

박상길 2024. 11. 4. 10:2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은행 업무 보는 시민들.<박상길 기자>

"그동안 참아온 게 아깝기도 하고, 지금 사면 물리는 건데 억울하잖아요? 대출도 안 되는데, 집 산다고 하면 주변에서 절대 사지 말라고 말리는 분위기입니다. 평생 세입자로 살아야 하는 건가요?"

지난달 31일 오후 만난 무주택자 김모씨는 올해가 가기전 내 집 마련을 계획했다가 포기했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부동산 카페를 살펴보거나 친한 지인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면 "지금 사면 꼭지(집값 정점)를 잡는 거기 때문에 집값이 하락하면 억울할 것"이라며 절대 사지 말라고 말린다고 한다.

여전히 불안한 집값 흐름 속에서 정부가 주택 구입용 정책대출인 디딤돌대출에 대해 오락가락 정책을 펼치자 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와 관련해 "통일된 지침이 없었고, 조치를 시행하기 전 충분한 안내 기간을 갖지 않아 국민들께 혼선과 불편을 드려 매우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 장관은 "최근 정책대출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주택시장과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에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 한정된 기금 재원을 보다 많은 분께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과도한 대출 확대를 자제하도록 은행에 요청한 바 있다"고 디딤돌대출 축소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역별, 대상자별, 주택유형별 주택시장 상황이 서로 다른 점을 고려해 비수도권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을 포함한 맞춤형 개선 방안을 이른 시일 내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현재 대출이 신청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조치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 추후 보완 방안을 시행할 때 국민 불편이 없게 사전에 충분히 안내해 드릴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예 기간을 두되, 수도권 디딤돌대출 신청자의 대출 가능 금액은 수천만원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는 다소 주춤해졌지만 은행권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계속 조이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은 가까스로 진정된 가계대출 증가세가 언제 다시 과열될지 알 수 없다고 판단, 연말까지 대출 억제 대책을 지속해서 추진할 전망이다.

NH농협은행은 지난 1일부터 한시적으로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최대 4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해 운용 중이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달 말까지 가계대출 중도 상환 해약금을 전액 감면한다. 중도 상환 부담을 낮춰 대출 총량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우리은행은 신용대출 갈아타기 상품의 우대금리를 1.0∼1.9%p 낮춘 데 이어 연말까지 인터넷,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한 신용대출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대출모집인별 신규 취급 한도를 설정했다. 각 모집인이 유치해오는 대출 규모를 일정 수준이 넘지 않도록 제한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올해 4분기 중에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억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무주택자 카페에서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주택 구매 관련 고충 글들이 올라오지 않고 있으며 카톡 등에서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무주택자들로 구성된 네이버 카페 '집값정상화 시민행동'의 송기균 대표는 "집값 폭등을 멈추게 한 요인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과 금융당국의 주택담보대출 통제에 의한 것인 바, 만약 금융당국이 DSR 적용이나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경우 집값은 재차 상승할 것이라는 불안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송 대표는 "정부가 내년 주택도시기금 대출 신규 공급액을 55조 원으로 설정했는데, 겉으로는 민간 금융기관의 주택 대출을 축소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뒤로는 정책자금(주택 구입용 디딤돌과 전세대출 상품인 버팀목 등)을 통해 주택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풀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더욱이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해 주택 투기를 부추기고 있으므로 무주택자들이 바라는 집값의 하락 전환 가능성은 더 멀어졌다"라고 주장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무리하게 내 집 마련에 나서기보다 가격이 낮은 급매물을 중심으로 선별 투자에 나설 것을 조언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올 들어 단기 급등한 만큼,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나 지난해처럼 급격한 조정은 아니라 완만한 조정 가능성을 내다본다"라며 "집값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리의 경우 인하 국면인 데다, 주택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심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서울과 수도권 수요자들은 일단 시장을 좀 더 지켜보다가 급매물 중심으로 선별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며 "2021년 10월 고점 대비 10∼20% 정도로 낮은 매물을 선별적으로 매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라고 설명했다. 또 "지방은 타이밍을 너무 재기보다는 가격 메리트를 보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라며 "손품·발품을 팔아 최대한 매입가를 낮추라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는 모든 지역의 가격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시기이므로 일괄적인 내 집 마련 결정은 어렵다"라면서도 "서울 등 주요 지역이라면 매수, 그렇지 않는 지방이라면 매수 타임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상길기자 sweatsk@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