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13회>
13. 좁은 길
거의 한 주간 두문불출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데, 수염은 무슨 영양분으로 이렇게 자라났을까.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도리어 맨정신으로 도망자의 사태를 직면하고 있었다. 1주일 전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꺼내온 우편물들은 뜯기지 않은 채 거실에 흩어져 종이 홍수가 난 상태였다. 우편물은 세상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매월 구독하는 문화예술잡지들, 증권사에서 보내온 투자 설명서, 인터넷 쇼핑 광고물, 아파트 관리비 통보 등이었지만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다. 1주일 동안 다시 배달된 우편물들이 우편함 입구에서 넘치다 못해 삐져나와 있을 것이다.
나는 흩어진 우편물들을 설렁설렁 살펴보다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름으로 발송된 초대장을 뜯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을 초청하는 온라인 행사의 초대장이었다. 작가들을 위해서 영어와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이미 한 달 전에 받았고, 나는 승낙을 한 상태였다. 날짜를 보니 행사는 오늘이었고 3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초대계정을 뚫어지게 보다가 초대장을 덮었다. 또 다른 초대장이 눈에 띄었다. 아는 유튜브 스타 S가 보낸 것으로, 온라인에서 남녀 만남을 주선하는데 오프라인처럼 마스크를 쓰고 참가해야 하는 것이 특이사항이라고 했다. 행사 제목은 ‘여자를 안달나게 하는 법’이었고, 마스크는 안날나게 하는 법의 일환이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웃어 제겼다.
내가 폭소를 터뜨린 것은 S의 콘텐츠가 우스워서가 아니었다. 여자를 안달나게 하지 못했을 때 남자가 느끼는 굴욕감을 유튜브에서 설명하던 그의 언어표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굴욕감이란 하필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손을 들고 허락을 받았는데, 교실을 나서기도 전에 바지에 오줌을 싸버려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알게 되면서 창피를 당하는 감정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대담장을 도망 나온 굴욕감이 차라리 그런 감정이라면 견딜만했을 것이다. 오줌을 싼 학생이 교실을 나가도 수업은 진행될 수 있지만, 대담자가 없는 대담은 더는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일 몇 시간이나 거리를 헤매면서 타인이 쫓아오지 않는 도망자의 수치심이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굴욕감이나 수치감 때문에 아파트에 1주일이나 나 자신을 감금해 버린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감금당했다기보다, 아파트를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진은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갑자기 모든 것이 흔들렸고 무너져 내렸다. 내가 여태 단단히 디디고 서 있던 세계로부터 내가 이탈된 듯했다. 이 아파트 안만이 내가 여태 알고 있던 세계를 보존한 느낌이었다. 이전의 세계과 지금의 세계 사이에는 한 문장이 있었다. 수많은 강연에서 나는 ‘언어 한 문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아야 한다’고 설파했었다. 그 본보기를 제대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대담에서 문제가 되었던 한 문장이 나를 이렇게 영혼의 폐허로 내몰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믿었던 지혜와 명철의 세계에서 쫓겨난 느낌이었다. 내 말이 나를 잡는 미끼가 되고 말았다.
나는 순간 쓰레기차 옆 정자에 서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버릴 수밖에 없는 물건에서 마음을 거두지 못해 서 있었던 낭만적인 모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가 폐허가 된 광경을 지켜보는 내 모습과 비슷했다. 아니 내 세계의 폐허를 그녀의 눈을 통해 확인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1주일 동안 두문불출하면서도 유일하게 세상 밖으로 머리통을 내민 순간이 떠올랐다. 거대한 철제 집게 손이 사정없이 여자의 머리를 치려던 순간, 나는 놀라서 창밖으로 급하게 고개를 내밀었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여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페르소나를 환상적으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국제도서전의 휘날레 행사는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온라인이지만 제대로 샤워하고 옷도 챙겨 입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내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에게 사과하던 노랑머리도 화면에 나타날 것이고, 자신의 대담자가 말없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처음으로 대담다운 대담을 했다’며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온 프랑스 작가도 얼굴을 내밀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세계 각국 작가들도 나타날 것이다. 국가 차원의 감사와 축사를 하기 위해 각국의 대사나 문화원장도 참석할 것이다. 이 화려한 행사에서 비열한 도망자가 축사를 말해야 할 판이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도망 그 자체가 아니었다. 도망조차 하지 못하는 양심을 가졌다면 절망했을 것이다.
나는 대담장을 빠져나오면서, 아니 도망 나오면서, 도망 나오고 나서 한참 헤매면서 그 문장이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것은 전혀 어려운 추리가 아니었다. 문장의 어투만 보아도 성경에서 나온 것임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대담장에서는 눈에 비늘이 덮인 듯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 문구의 출처가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럽권에서 외교관을 지낸 아버지는 모태 크리스천이었고, 출생하는 아이들에게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주는 서양문화 속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더구나 유럽의 예술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통독이 필수였기에 군데군데 뛰어넘으면서 읽은 횟수로 치면 서너 번은 읽었을 것이고,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성경의 한 구절이 지니는 가치를 논하는 글을 쓴 적도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 표지 문구가 성경 몇 권 몇 장에 있는지 다시 찾아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지금은 읽어도 읽을 수 없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움이 일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둠 속에 나를 가두어 버린 상태였다. 누군가 숨어서 나를 기다리다가 잡아채서 어둠의 주머니 안에 가둔 듯이 보이지 않았다. 이 어둠에서 계속 발버둥치면서 영원에 갇힐지도 몰랐다. 하지만 구조대의 신호가 반짝이고 있었다. 10분 안에 온라인 행사의 계정 안으로 들어가서 보란 듯이 여러 언어로 축사를 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내가 이 초대장에 응한다면, 나는 과거의 나를 아주 쉽게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편함을 가득 채우는 세상의 수많은 요청에 응답하며 그전보다 더 큰 명예와 영예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국제예술창작재단의 실패한 대담도 노랑머리의 잘못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녀의 애매한 전달로 대담장을 떠났다는 거짓말 한마디면 뒷마무리를 충분히 할 수도 있었다. 프랑스 작가가 보내온 ‘대담다운 대담을 처음으로 했다’는 문장을 보여주면, 그 대담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주변을 손쉽게 납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을 조금만 속이면 나는 기존의 세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의 문장들에 말을 걸며 내 지혜와 명철을 뽐내는 넓은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책을 방패 삼아 세상에서 더 많은 명예와 기쁨을 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내 영혼을 혼미하게 하여 그 표지 문구를 이해하지 못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표지 문구, 그 한 문장 안에 내가 여태 만나지 못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다. 나는 우편물들 안에 든 수많은 책과 문장들이 제시하는 넓은 길로 다시 나가기보다, 여태 가보지 않은 길, 프랑스 작가가 선택한 표지 문구 한 문장의 의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경쟁심도, 내 자존심도, 진정한 독서의 신이 되기 위한 결단도 아니었다. 그 한 문장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 한 문장의 세계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그 한 문장 안의 좁은 길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정말 그 문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떠나기로 했다.
▶다음 회에 계속 ···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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