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에 ‘조직 안정’ 최우선… 카리스마 대신 ‘정중동’ 행보[Leadership]
카리스마형 리더였던 검사시절
법무부 복귀뒤엔 ‘지원군’ 자처
檢개혁 압박… 野와 충돌도 불사
주목 못받던 법무행정에도 중점
범죄 피해자 핵심정책 7선 발표
新이민정책으로 사회통합 추진
“앞에서 끄는 ‘카리스마형’ 리더십을 버리고, 뒤에서 미는 ‘서번트형’ 리더십을 보여준다.”
취임 9개월 차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향한 법무부 안팎의 평가다. 박 장관은 검사 시절 깐깐한 사건 처리로 유명했고, 부서장으로서는 조직·업무 장악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2006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 시절 부원들을 이끌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증여 사건과 해태그룹 비자금 사건 등을 수사한 ‘특수통’이다. 특히 박 장관은 2015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이 연루된 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를 지휘하면서 검찰 안팎의 우려와 주요 고비를 강단 있게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 주목받았다. 이런 성과의 배경에는 솔선수범하면서도 밤낮없이 구성원들을 몰아친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고검장 사직 6년여 만에 법무·검찰을 아우르는 법무부 장관으로 복귀하면서 박 장관은 변했다. 주요 수사에 대해선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잘하고 있다”며 거리를 뒀다. 대신 범죄대응 역량을 높이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하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직제와 인사를 추진했다는 평가다. 지원군 역할에 치중한 셈이다.
이 때문에 박 장관은 전임 장관들이나 타 부처 장관들보다 존재감이 작다는 평가도 받는다. 박 장관의 ‘정중동’ 리더십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4년여간 정치인 출신(추미애·박범계)이나 정치인이 된(조국·한동훈) 장관이 이끌면서 조직이 부침을 겪었다”며 “간섭하거나 내지르는 장관이 아니라 방파제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아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무부는 원래 전면에 나서면 안 되는 지원 부서”라며 “장관이 존재감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직 내에서는 정중동이지만, 야당을 상대하는 국회에서는 의원들과 충돌을 불사하더라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우외환 검찰에 ‘안정’, 갈 길 바쁜 법무 정책에 ‘실용’ = 올해 법무부는 안으로 인력난, 밖으로 검찰개혁 압박에 시달리는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인력 충원을 위한 검사 증원법은 국회에서 막혔다. 민주당은 헌정 사상 초유의 검사 탄핵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예산을 죄다 깎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중점 사업마다 국회에서 제동을 거는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수사를 둘러싸고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해 검찰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여기에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지연 등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 장관은 지난 2월 취임사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재판 지연으로 많은 국민이 불편하다. 검경 간 사건 떠넘기기와 부실수사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민생사건을 신속히 수사하기 위해 업무 프로세스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자체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준비 기간을 거쳐 강일원 전 헌법재판소장이 위원장을 맡은 형사사법특별위원회를 7월 출범시켜 해법을 모색 중이다.
박 장관은 또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법무행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3월 첫 정책방문으로 마약류 중독치료를 맡은 인천참사랑병원을 택해 재범방지책에 힘을 실었다. 4월 15일에는 시범 실시 중이던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끊임없이 재발하는 마약 범죄를 끊어내기 위해 강력한 단속뿐 아니라 치료·재활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참여한 마약사범에게는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정신건강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위원회가 중독 수준을 꾸준히 평가해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을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5월에는 범죄 피해자들을 울리던 정책 사각지대 전반에 칼을 댔다. 대표적 예가 공탁이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기습 공탁’ ‘먹튀 공탁’ 등으로 빠져나가는 경우를 막아야 정의가 바로 선다는 것이다.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감형을 방지하는 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한편 피해자 신변보호·지원을 강화하는 여러 조처를 단행했다. 서울소년분류심사원과 안양소년원을 현장점검한뒤 소년범 재범 방지책을 주문하는 등 검찰에 치중한 법무 행정을 출입국·교정·범죄예방 등 전 분야로 확대 중이다.
◇정직에 기초한 리더십 강조, 인구 대책 초석도 =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고령화에 이민까지 포괄한 인구정책을 다루는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신 출입국·이민정책 추진안’을 9월 26일 발표했다. 5년 내 전문·기능인력 10만 명을 추가 확보해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기반 이민정책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는 선별 유입과 단계적 사회통합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 장관은 대구지검 형사부 시절 윤 대통령과 옆 부서에서 근무했다. 당시 막내 초임검사였던 윤 대통령을 불러 아침을 챙겨주는 등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돼 대구고검에서 근무할 때는 그의 상사인 대구고검장이었다. 실력보다 친분에 기운 인사라는 일부 비판에 박 장관은 “대통령이 친소관계로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검찰 인사권과 일반 지휘권을 ‘대통령 비호’에 사용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 중”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비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있는 산처럼’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박 장관은 법무부 직원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한결같음을 자주 강조한다. SNS 프로필 사진도 고향인 경북 청도군에 있는 억산이다. 그는 특히 장관이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한 질의에 “정직에 기초한 리더십”이라며 “성실하지 않으면 직원들의 인정을 받기 어렵고, 정직하지 않다면 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빈말이 없고 업무에 엄격한 원칙주의자”라며 “각 부서에서 수많은 보고를 받아 모두 숙지할 뿐 아니라 다음 보고 방향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강한·이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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