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클레이머', 정호연의 영리한 글로벌 진출 신호탄
아이즈 ize 정명화(칼럼니스트)
'여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배경은 모두 허구입니다.' 여러 창작물의 서두에 기재된 이 문구는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에서 주어지는 면책조항을 담보하는 의미를 담는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디스클레이머(Disclaimer)'는 이 면책조항을 뜻한다. 단 한사람만을 위해, 그 사람이 읽어주길 바라며 펴낸 소설책의 작가도 면책조항을 받을 수 있을까.
총7화의 에피소드 중 6화까지 공개한 '디스클레이머'는 화려한 캐스트로 기대를 받아왔다. 작품의 참여한 이들이 수상한 아카데미 트로피만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 '로마', '그래비티',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 등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을 맡고 역시 아카데미 수상자 케이트 블란쳇과 케빈 클라인, 사샤 바론 코헨 등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레네 나이트의 원작 소설에 매료돼 TV시리즈 연출을 수락했다. 원작이 가진 캐릭터의 깊이와 서사를 긴 분량의 시리즈로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출에 도전한 그는 마치 귓속말을 하듯 내밀하지만, 흡입력 있는 스릴러를 만들어내놨다.
쿠아론 감독을 홀린 원작소설은 2015년에 첫 출간됐으며 출간 직후 선데이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이듬해 각종 유력 어워드 후보에 오르는 등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모두 이끌어냈다.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발하며 다음 드러날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디스클레이머'는 주요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한편,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그녀는 진실을 오랫동안 완벽하게 숨기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디스클레이머'는 풋풋한 19살 청춘커플의 대담한 기차 객실 애정행각을 비추며 시작한다. 19살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 '조나단'은 여자친구와 유럽을 여행 중이다. 갑작스런 이모의 부고를 듣고 여자친구가 집으로 가버리자 조나단은 홀로 남아 이탈리아 여행을 계속한다.
이야기는 완고하고 외로워 보이는 얼굴을 가진 초로의 남자 '스티븐'(케빈 클라인)을 비춘다.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인 그는 학부모와 트러블을 일으키고 퇴직한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들과 그 아들의 부재를 고통으로 채웠던 아내 역시 몇년 전 암으로 숨을 거뒀다. 모든 것을 잃은 그를 움직이게 한 건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발견한 사진 몇장과 그녀가 써내려간 소설이었다.
카메라는 다시 성공한 저널리스트 '캐서린'의 얼굴을 따라간다. "감춰진 비밀을 파헤쳐 세상에 폭로해 진실을 알린"이라는 찬사와 함께 당당히 상을 수상하는 캐서린. 부와 명예, 사랑까지 모두 가진 이 우아하고 지적인 여성의 완벽한 일상은 어느날 집으로 배달된 소포 속에 담긴 소설책 '낯선사람'으로인해 바스라지고만다.
드라마는 각자 비밀을 간직한 두 인물이 서서히 서로의 삶 속으로 반경을 좁혀 들어가며 벌어지는 사건과 긴장감, 그리고 서스펜스를 그린다. 페이드아웃 기법으로 다소 고루한 스타일이지만, 주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들의 감춰진 비밀과 관계를 그려나간다.
케빈 클라인이 연기하는 스티븐은 죽은 아들 조나단의 비극이 캐서린 때문이라고 믿고 생애 마지막을 복수를 위해 태우는 인물이다. 남은 삶과 모든 것을 그녀를 파멸시키겠다는 집념으로 심리적으로 캐서린을 옥죄어 간다. 그리고 복수를 위한 도구는 아들을 잃고 삶을 놓아버린 아내가 고통 속에 써내려간 소설 '낯선사람'이다. 아무도 모르길 바랐던, 그래서 이제는 심연으로 가라앉아 누구도 들여다볼수없을거라 안도했던 캐서린의 과거가 '낯선사람'에 너무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잘 쓰여진, 유려한 문장은 결코 아니지만, 캐서린 단 한명에게는 뜨겁게 달군 쇠로 지지는듯한 엄청난 충격을 준 '낯선사람'의 글귀. 누군가의 비밀을 폭로하며 명성을 얻은 그녀는 자신이 숨겨온 비밀로 인해 모든 죄책감과 공포에 허우적거린다.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서, 죄책감과 복수의 복잡한 감정을 깊이 있게 다루며 과거의 잘못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차분하고 단정한 여성의 나레이션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이입되는 순간, 마치 소설을 읽는듯 객관적 3인칭으로 빠져나와 보다 냉정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성적 표현 수위는 그 어떤 작품보다 높다. 조나단이 죽기 전 캐서린과 나눈 잠시의 치명적인 불장난은 매우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담겨있다.
과거 캐서린은 배우 레일라 조지가 맡아 과감한 전라 섹스신을 연기했다. 숀 펜의 세번째 부인이자 배우 빈센트 도노프리오의 딸이기도 한 레일라 조지는 내밀한 욕망을 젊은 청년에게 표출하는 아름답고 고혹적인 유부녀를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디스클레이머'는 '오징어게임'으로 스타덤에 오른 정호연의 글로벌 진출작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정호연은 캐서린의 비서 '지수' 역을 맡아 3회의 에피소드에 얼굴을 비춘다. 정호연이 맡은 지수는 캐서린의 사무실로 찾아온 스티븐을 맞아, 캐서린에게서 배운 취재 스킬을 시도해 스티븐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야심가의 면모를 드러내는 인물이다. 유창하게 영어대사를 소화하며 대배우 케이트 블란쳇, 케빈 클라인과의 일대일 신에서도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총 7화 분량 중 6화의 에피소드를 공개한 '디스클레이머'는 캐서린이 "이제는 내 이야기를 할 차례"라는 말로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회심의 반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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