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차에 토하고 화장실 세면대 부숴…고주망태 넘치는 파출소 불금 [르포]

112 신고 출동 최일선 지구대·파출소, 술자리 몰리는 연말 앞두고 초긴장

지난 2일 오전 0시4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파출소 앞에서 야간 1팀이 만취상태의 A씨를 부축하고 있다. 조모 순경이 비틀거리는 A씨를 붙잡으며 다가오는 택시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이현수 기자

핼러윈 주간의 '불금'이었던 지난 2일 새벽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 거리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이날 오전 0시30분 30대 남성 A씨가 만취해 택시를 타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파출소에서 내렸다. A씨는 파출소 앞 주차된 오토바이를 붙잡고 구역질을 했다. 야간 1팀 두모 경장은 익숙하다는 듯 비닐봉지를 건넸다. 조모 순경은 비틀거리는 A씨를 부축했다.

A씨는 5분쯤 전 파출소로부터 약 600m 떨어진 압구정로데오역 2번 출구 앞에서 두 경장과 조 순경이 택시에 태워 보낸 남자였다. "지하철역 앞에 사람이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3분만에 출동한 곳에 A씨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택시 타고 갈 수 있다"는 A씨 말에 경찰들은 A씨를 택시에 실어 보냈다. 하지만 출발과 동시에 A씨가 "속이 안 좋다"고 하자 기사는 집이 아닌 파출소에 A씨를 내리고 떠났다.

강남경찰서 압구정파출소 순찰1팀 팀장 허모 경감은 "이 정도면 굉장히 양호한 편"이라며 "택시에 탔고 보호자 연락도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집 안까지 무사히 들어간 것을 확인해야 해서 때로 집이 가까우면 아예 순찰차로 데려다주기도 한다고 허 경감은 설명했다.

경찰 112신고 출동 최일선에 있는 지구대·파출소 직원들이 각종 술자리가 몰리는 연말연시를 앞두고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주취자 보호는 물론 다른 중요한 신고도 놓치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일 오전 0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파출소 앞. A씨가 길가에 주차된 오토바이에 기대 구역질을 하고 있다. /사진=이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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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취 신고 1년 100만건, 몸살 앓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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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2시쯤 만석이 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 거리의 술집. '군중밀집우려시 안전거리두기'라고 적힌 안내표지 아래 클럽과 술집을 찾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사진=이현수 기자

'주취신고 대응'은 주말 밤 압구정파출소 직원들의 주 업무로 자리 잡았다. 지난 2일 새벽 1시쯤 압구정로데오 거리에만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술에 취해 도로 한복판에 누워있거나 순찰차나 길에 구토하는 모습은 이곳 경찰들에게 익숙한 광경이다.

밤마다 숨 돌릴 틈이 없는 곳은 압구정파출소뿐만이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취자로 인해 경찰이 출동한 건수는 95만8602건이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접수되는 교통 관련 112신고 출동 건수의 절반에 달한다.

강남경찰서 소속 B 경감은 "하루 신고 100건 중 술과 직간접적으로 아예 관련이 없는 신고는 1~2건 뿐"이라며 "보호 조치뿐만 아니라 시비, 교제 폭력, 가정폭력 등 사건들도 대부분 주취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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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그만두고 싶냐?" 공권력 도전하는 주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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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2시2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역 앞에서 한 남성이 인도와 차도에 걸쳐 엎드려있다. /사진=이현수 기자

A씨처럼 의식이 있고 대화가 가능하면 상황이 낫다. 주취자가 의식을 잃은 경우 소방당국에 공조를 요청해야 한다. 소방당국이 주취자의 혈압과 맥박, 동공을 확인해 이상이 있으면 병원으로 후송한다. 이상이 없으면 파출소에 데려와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보호한다. 야간 팀 직원 8명이 112신고 수십건에 대응하는 동시에 관서 내에서 주취자들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경찰 앞에서도 행패를 멈추지 않거나 욕설과 폭력까지 쓰는 주취자도 있다. 실제 같은 날 새벽 2시 압구정로데오 거리의 한 남성은 고성을 지르며 주차금지 팻말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또 다른 한 남성은 인도와 차도에 걸쳐 엎드렸다. 땅을 울리는 클럽 음악과 담배 연기 사이로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허 경감은 "반말에 욕설은 기본이고 '다 잘라버린다' '경찰 그만두고 싶냐'고 할 때는 허탈감도 느낀다"며 "언제든 주먹이 날아올 수 있어서 주취자와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고 몸 뒤에서 조치한다"고 말했다. 형법상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어 "체구가 작은 주취자라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다"며 "파출소 안에서 보호하던 여성 주취자가 화장실에 간다고 하더니 거울과 세면대를 깨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이현수 기자 lhs17@mt.co.kr 김미루 기자 miroo@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