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분단 우려와 대응 포인트[이지평의 경제돋보기]
현지화 전략과 초크포인트 기술로 경쟁력 강화해야
세계경제의 분단이 우려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0월 전망에서 2025년의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소폭 하향 수정하면서 무역 보호주의 강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미·중 패권전의 격화와 함께 심화한 보호주의 압력은 우크라이나, 중동전쟁 등 지역분쟁의 빈발도 겹쳐 더욱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향후 세계경제의 분단화가 심해져 파국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물론 점점 심해지고 있는 보호주의가 글로벌화의 완전한 후퇴와 블록경제를 초래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G7과 한국 등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연합 세력과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의 대항 세력의 대립 속에서 글로벌 사우스라고 불리는 인도, 브라질 등은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G7 등의 요청을 어느 정도 무시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세력의 마찰 속에서 중립적인 지위를 활용해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사우스의 경우도 자원민족주의를 활용한 제조기업의 유치, 디지털 플랫폼을 독점하려는 미국 빅테크에 대한 견제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신흥 디지털 은행인 누뱅크가 급성장하는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도 독자적 디지털 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글로벌화를 제약하는 각종 규제와 경제안보, 국산화가 강조되는 상황 속에서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는 글로벌 경제환경은 하나의 트렌드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성을 보인다. 기업으로서는 이런 환경을 고려해 전략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기업은 경제안보와 각국 정부 개입의 확대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효율성뿐 아니라 안정성을 고려해 재고도 여유 있게 축적하는 등 생산 및 공급망 전략의 재편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제품 및 기술개발, 판매, 제휴 등 전체적인 전략 차원에서도 새로운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기업도 성장 과정에서 고도화해왔던 글로벌 경영전략 등을 새로운 시대에 맞게 혁신해야 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면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기술 표준을 설정하면서 규모의 경제성을 확보해 각국 시장에서 비슷한 제품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려는 글로벌 전략의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 중국 등 신흥국 시장에서 애플 휴대폰의 입지가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한국 휴대폰도 동남아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지 소비자의 특성을 고려해 제품, 부품, 디자인, 소프트웨어, 디지털 플랫폼 등에서 현지 기업과의 제휴 및 협력을 세밀하게 구축하는 등 보다 현지 시장에 밀착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소니 등은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는 한편, 세계 각국의 현지 디지털 생태계 기업, 현지 문화에 기반한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일본 시장에 특화하는 갈라파고스 전략으로 인해 그동안 세계 시장에서의 지위가 약화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과 같이 글로벌화가 후퇴하는 복잡한 세계경제 환경에서는 각국 현지 시장에 세밀하게 대응하는 ‘멀티 갈라파고스 전략’이 새로운 성공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우리 기업도 이처럼 각국 시장을 제2, 제3의 국내 시장화할 정도로 세밀한 현지화 전략을 세우는 일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모든 소비재, 제조장치 등에 인공지능(AI)이 탑재되고 데이터 주권 의식도 강화되는 가운데 신흥국을 포함한 각국이 자국 지향의 AI나 데이터 기반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글로벌한 차원의 AI 전략과 함께 로컬 AI 전략도 필요해질 전망이다. 그리고 어떤 보호주의도 극복할 수 있는 중요 산업의 핵심 초크포인트(길목) 기술 및 제품에 기반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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