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개인으로서의 '나'…황여정 소설 '숨과 입자'

황재하 2024. 11. 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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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정 작가의 신작 '숨과 입자'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잊은 채 살아가던 주인공이 한 개인으로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일련의 사건을 거쳐 도이수는 살아 숨 쉬는 감각을 되찾게 되고, 자신이 사회나 집단의 일부분이 아니라 마치 입자처럼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며 타인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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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나를 이루는 것 중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일까"
황여정 장편소설 '숨과 입자'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황여정 작가의 신작 '숨과 입자'는 살아있다는 감각을 잊은 채 살아가던 주인공이 한 개인으로서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고향을 떠나 서울의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여성 도이수는 자신이 번아웃(burnout·극도의 피로와 의욕 상실) 상태임을 깨닫는다.

도이수는 자기 삶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살아왔다. "퍼스널 라이프를 디자인하라"는 회사 대표의 말이 멋지다고 생각해 가장 세련된 직장 동료의 옷차림이나 말투를 따라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어떤지 가늠했다. 그러던 그는 회사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고를 겪는다. 30분 동안 숨이 막히는 듯한 공황을 느낀 이수는 이후 극심한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한 달 만에 회사를 관둔다.

도이수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의 의미를 깨달은 것은 퇴사 후 떠난 포르투갈 여행에서다. 우연히 만난 요가 강사 아드리아나는 이수의 사연을 듣고 "본래 너의 것이 아니었던 것들이 '철수'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수는 아드리아나의 손에 이끌려 포르투갈에서 처음 요가를 경험하는데, 몸동작과 호흡을 일치시키라는 주문에 따라 움직이면서 자신이 평소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는 한편 환희를 느낀다.

한국으로 돌아온 도이수는 '숨'이라는 이름의 요가원을 차리지만, 포르투갈에서 요가하며 느꼈던 환희에 찬 감각은 차츰 기억에서 멀어진다. 몇 년 뒤 그런 이수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나 "'길병소'라는 사람을 아시느냐"고 묻는다. 여자는 도이수가 기억에서 완전히 잊고 있던 포르투갈어로 쓴 시집 한 권을 건넨다. 이수가 포르투갈 여행 때 기념품으로 사 온 시집인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혀 모르는 인물인 길병소의 손에 가 있었던 것.

이후 밝혀진 사연은 이렇다. 도이수의 동생 도이영은 교회 기도원에서 일하다가 다큐멘터리 영화 취재를 위해 찾아온 길병소를 만났고, 집에 있는 책을 한 권 선물해달란 병소의 부탁에 언니 이수의 책을 선물한다.

길병소는 원래 주인인 도이수도 대충 읽었던 그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 들여 번역한다. 그런 병소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연인이었던 여성이 병소의 유품에서 도이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일련의 사건을 거쳐 도이수는 살아 숨 쉬는 감각을 되찾게 되고, 자신이 사회나 집단의 일부분이 아니라 마치 입자처럼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며 타인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는다.

황여정 작가 ⓒ정지현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는 "나는 뭘까?"라는 것이 최초의 질문이었으며 그것이 이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었다고 작품의 배경을 설명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를 이루고 있는 것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이고 나 이외의 사람들의 의지일까. 당신은 누구일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개인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작가의 말'에서)

'숨과 입자'는 이처럼 개인의 자아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사람의 이야기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이 '사람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사회 문제에도 눈을 돌린다. 작중 도이영의 중학생 시절 단짝은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가 공장 현장실습 도중 폭설로 지붕이 무너져 숨진다. 이는 2014년 2월 열아홉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대환 군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이영은 친구가 사망한 뒤로도 고교생들이 현장 실습 도중 산업 재해로 죽고 다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숨과 입자'는 황 작가의 세 번째 장편이다. 황석영 작가의 딸인 황여정은 2017년 '알제리의 유령들'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0년 장편 '내 이름을 불러줘'를 발표했다.

창비. 252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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