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 향한 스페인 수재민들 분노…"살인자" 진흙·오물 집어던졌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레티시아 왕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등과 함께 수해로 피해를 본 발렌시아주를 찾았다. /로이터=뉴스1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대홍수로 큰 피해를 본 현장을 찾았다가 분노한 수재민들에게 진흙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수재민들은 국왕을 향해 "꺼져라" 등의 욕설도 내뱉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 AFP통신 등에 따르면 펠리페 6세는 이날 레티시아 왕비,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등과 함께 이번 수해로 최소 62명의 사망자가 나온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방문했다.

이 곳 주민들은 피해 지역을 걷는 펠리페 6세와 산체스 총리 일행에 진흙과 오물을 집어 던지면서 "살인자들", "부끄럽지 않냐", "꺼져라" 등의 욕설을 했다. 한 청년은 국왕을 향해 국가의 이번 수해 대응에 대해 지적하면서 "누구도 재해를 피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주민인 누리아 치스버씨는 눈물을 보이며 "아직 친척과 친구들을 찾고 있다"고 소리쳤다.

경호원들은 국왕과 왕비에 급히 우산을 씌우며 이들을 보호했으나 왕비의 머리카락과 얼굴에는 진흙이 묻은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레티시아 왕비의 경호원 중 한명은 주민들이 던진 물건에 맞아 피를 흘리기도 했다.

결국 국왕 일행은 수해 지역 방문을 중단했다. 펠리페 6세는 다른 일행보다 더 오래 머물며 주민들을 위로하려 시도하는 모습이었지만 산체스 총리는 서둘러 방문을 종료했다고 로이터 등은 전했다. 사람들은 산체스 총리가 떠날 때 "산체스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주민들이 국왕과 스페인 정부에 이처럼 분노한 것은 이번 수해가 당국의 늦은 대응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리칸테 대학의 기후 전문가인 호르헤 올치나더 로이터에 "주민들에게 적시에 경보를 보냈다면 많은 사망자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가 당국과 지역 당국 간의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스페인에서는 지난달 29일 쏟아진 폭우로 최소 21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십 명의 소재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약 3000가구가 여전히 단전을 겪고 있다. 당국은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수색이 이어지면 희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산체스 총리는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대응이 충분하지 않고 부족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군인과 경찰 1만명을 피해 지역에 추가로 파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추후 재해 대응 관련 과실을 살펴보고 책임 소재를 파악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소셜미디어(SNS) 'X' 캡처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