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죽였는데 “저건 정의구현이지”…‘참교육’으로 포장되는 사적 복수
아버지 숨지게한 30대 남성
중범죄에도 동정여론 일어
불법 정당화에 법치 흔들
“양형 기준 강화해 보완을”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양은상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A씨에 대해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서울 서부경찰서는 A씨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 있다.
A씨는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자택에서 어머니에게 술값을 달라며 욕을 하는 70대 아버지에게 둔기를 여러 차례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 가정에는 지난 2017년, 2021년에도 가정폭력 신고가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뒤 어머니와 번개탄으로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경찰에 자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A씨의 범행 동기에 주목하며 그를 동정하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아버지가 오죽 괴롭혔으면 살해를 결심했겠느냐”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가정폭력으로 신고해도 경찰이 보호해주지 않으니까 결국 범죄를 저지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평화의 소녀상에 입을 맞춰 공분을 샀던 미국인 유튜버 조니 소말리에 대해 마치 동물을 쫓듯이 “(소말리를) 사냥하겠다”는 국내 유튜버들이 나타나 논란이 됐다. 지난 9월엔 한 유튜버가 밤거리에 잠복해 음주 운전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운전자를 추격하자, 이를 피해 달아나던 운전자가 대형 트레일러를 들이받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더욱이 사적 제재를 ‘참교육’이라며 정당한 보복 행위로 포장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국가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범행의 동기가 된 만큼 사적 제재로 인한 처벌은 법원에서 정상참작의 사유로 봐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법이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정작 범죄자는 제대로 심판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사적 제재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적 제재는 엄연히 불법이다. 폭행, 살인 등 중범죄 외에도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신상 정보를 유포하는 것도 명예훼손, 업무방해 혐의를 받을 수 있다.
실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관련 가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한 이들이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성폭행 가해자 여러 명의 신상 정보를 유포해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 혐의를 받았다.
신상 공개와 같은 사적 제재는 사실 검증이 되지 않는 제보, 인터넷 게시글 등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아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사적 제재가 혐오와 폭력의 악순환을 유발하고, 범죄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법치주의가 후퇴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올해 초 발표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20~50대 1000명은 중 92%는 “사적 제재는 사회 문제”라고 답했다.
법무법인 상원의 문인곤 대표변호사는 “사적 제재가 불법 행위란 인식을 사회가 분명히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도 “법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양형 기준을 강화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적제재와 관련해 “법을 강화해야 하는 부분이지, 범죄의 정당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사적 제재 사이버 레커에 의한 소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회적으로 공분을 샀던 인물에 대한 사적 제재는 후원금을 받거나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에서 유튜버로 활동하는 20대 남성은 소말리를 주먹으로 폭행한 혐의로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 남성은 범행 계획을 ‘잠실여명작전’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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