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북은 보아라…'한국인 비자 면제' 중국의 포석

김인한 기자 2024. 11. 4.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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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악명 높던 '중국 비자' 기습 면제..."상호주의 외교 원칙도 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7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서 한 달 반 만에 다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AFP=뉴스1


중국이 예고 없이 '한국인 비자 면제' 결정을 내린 배경은 러북 밀착과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에 '외교 공간'을 넓히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외교적으로 '비자 면제' 카드는 국가 간 협상 과정을 통해 '기브 앤 테이크'(주고 받기) 과정에서 나오는데 이번 결정은 우리 정부와 사전 교감도 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3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비자 면제는 보통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조치하는 것임에도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린 것은 복합적인 측면이 있다"며 "표면적으로는 관광 시장 등 개방을 통해 내수 경기 활성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일 한국을 무비자 대상국으로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지난해 12월 독일·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 등 6개국을 대상으로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 후 30번째 대상이다. 한국 여권 소지자는 오는 8일부터 내년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총 15일 간 비자 없이 중국을 들어갈 수 있다.

이번 결정은 중국의 내수 경기 활성화 의미를 지닌다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문화관광부가 집계한 올해 1~2분기 입국 관광객 현황에 따르면 한국 관광객은 1분기 5만3419명, 2분기 11만2295명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 관광객은 무비자 혜택 없이도 상반기 홍콩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중화권을 제외하고 중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였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선제적으로 개선하려는 목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 비자는 직장과 학력은 물론 부모·배우자 직업과 나이 등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해 악명이 높았다. 단순 여행 목적에도 10만원이 넘는 사설업체 비자 대행을 쓸 정도로 발급 요건이 까다로웠다.

또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 50대 A씨가 지난해 말 반(反)간첩법 혐의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중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 검찰은 수개월 전 A씨를 구속했다. 중국 수사당국은 중국의 한 반도체 기업에서 근무한 A씨가 반도체 관련 정보를 한국으로 유출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이 지난 9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국립 헌법센터에서 열린 첫 TV 토론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강 교수는 "최근 반간첩법 혐의로 구속된 우리 국민 사건을 일부 희석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며 "전체적으로 내년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 방한에 대비한 긍정 이미지 구축 목적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외교적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들어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면서 중국으로선 한반도 내 중국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러시아에 특수부대원 등을 3000여명 파병한 것으로 알려졌고 러시아로부터 첨단 군사기술 등을 이전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강 교수는 "최근 러북 밀착과 북한의 도발에 따른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비자 면제 조치를 통해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일부 주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외교적으로 기본인 '기브 앤 테이크'(주거니 받거니) 관례도 깬 결정"이라며 "북한은 자국 노동자 송환 문제 등을 두고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고 중국도 그동안 묵인해 오던 북한의 밀수 행위를 강경 대응하고 있어 한국에 구애의 손짓을 보낸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조치에 한국을 떼어놓으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5일(현지시간) 미국 대선에서 맞붙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모두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뿐 아니라 첨단 기술이전 금지 등을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유화적 제스처를 보내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정책에 한국이 동참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취지라는 게 전문가 평가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올해 들어 중국과 관계 개선 노력도 일부 효과를 얻은 것으로도 보인다. 조 장관은 지난 5월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4시간 이상 한중관계 개선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 우리 외교부 장관이 양자회담을 위해 베이징을 찾은 것은 2017년 11월 강경화 전 장관의 방문 이후 약 6년 6개월 만이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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