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흑인의 희망과 상처, 꿈과 고뇌와 승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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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ny' 창간 발행인 존 해럴드 존슨(John H. Johnson, 1918~2005)은 아칸소 출신 농부의 아들로 193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 기간에 일자리를 찾아 일리노이주로 이주했다.
남루한 옷차림과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서도 그는 고교 학생회장 겸 교지 편집장으로서 동창인 훗날의 재즈 거장 냇 킹 콜과 희극인 레드 폭스 등을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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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ny’ 창간 발행인 존 해럴드 존슨(John H. Johnson, 1918~2005)은 아칸소 출신 농부의 아들로 193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 기간에 일자리를 찾아 일리노이주로 이주했다. 남루한 옷차림과 사투리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서도 그는 고교 학생회장 겸 교지 편집장으로서 동창인 훗날의 재즈 거장 냇 킹 콜과 희극인 레드 폭스 등을 인터뷰했다. 시카고대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생활비가 없어 진학을 포기한 그는 지역 한 보험회사에 취업해 사장 비서로서 신문과 잡지 기사 요약본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는 어머니가 가구를 담보로 대출받은 창업 자금 500달러로 1942년 11월 ‘니그로 다이제스트(Negro Digest)’를 창간, 6개월 만에 발행 부수 5만 부의 근사한 잡지로 성장시켰다. 전성기 10만 부 이상 발행된 니그로 다이제스트는 흑인의 역사와 문학, 예술 등 문화 이슈를 주로 다뤘고, 1970년 ‘Black World’로 잡지명을 바꿔 1976년 4월호까지 발행됐다.
두 번째 잡지가 ‘Life’를 벤치마킹한 ‘Ebony’였다. Ebony는 흑인 시사 포토 에세이와 연예·문화계 스타, 정치인 심층 인터뷰뿐 아니라 인종·인권 관련 시사 문제도 폭넓게 소화하며 미국의 추악한 진실을 보여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흑인도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동등한 인간이자 시민임을 보여주었다. 잡지는 수많은 퓰리처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그는 어린이 잡지 등 다양한 자매지도 발행했다.
창간 30주년이던 1975년 행사에서 그는 “지금도 우리는, 우리 이야기, 우리의 희망과 상처 꿈과 고뇌와 승리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중요한 이야기이며, 미국의 존재 의의이자 구원의 정수라 믿는다”고 말했다.
2005년 시카고대 록펠러 기념교회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전 대통령 빌 클린턴과 차기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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