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한번도 똑같은 연기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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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두고 '연극 속에 갇힌 손진책'이라고 농담할 때가 있어요. 손진책 씨가 본인 하고 싶은 작품만 맡을 수 있도록 옛날엔 제가 이 무대 저 무대 오가면서 뒷바라지했거든요. '벽 속의 요정'은 이렇게 가족에게 애틋함을 품어 봤다면 누구나 '내 이야기'라고 느낄 작품이에요."
"과분한 칭찬을 받아 온 작품인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과 멋진 관객을 만난 덕택임을 깨달았어요. 모름지기 배우라면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게 꿈이라지만 '벽 속의 요정'은 건강하게 몇 년간 더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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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배역 넘나들며 350회 공연
“20년전 의상 맞추려 6시 이후 금식”
극단 미추의 1인극 ‘벽 속의 요정’을 20년간 이끌어 온 배우 김성녀 씨(74)의 말이다.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이 작품은 1950년대 반정부 인사로 몰리면서 벽 속에 숨어 살게 된 아버지와 그를 벽 속 요정이라고 믿었던 딸, 벽에 갇힌 남편을 대신해 밤낮으로 고생한 아내의 50년 세월을 그린다. 김 씨의 남편이자 극단 미추의 대표인 손 씨가 연출했다.
김 씨는 ‘벽 속의 요정’으로만 350회 가까이 무대에 섰다. 2005년 초연된 이듬해 동아연극상 연기상까지 안으면서 ‘관록 있는 배우’로 대중에게 각인을 새긴 작품. 지난달 31일 전화로 만난 그는 “시작할 땐 가시관, 끝나면 월계관으로 바뀌는 공연이다. 이 나이에 응석 부리는 게 웃기지만 저 정말 힘들다”며 웃었다. “아무리 20년을 한 작품이라지만 나이가 들면서 대사를 깜박하거나 노래가 벅찰 때가 있다. 그 대신 중압감에 압도됐던 옛날과 달리 이젠 등장인물이, 대사 한 줄 한 줄이 나에게로 온다”고 말했다.
5세 딸부터 70대 노인까지, 김 씨는 약 30개 배역을 넘나들며 2시간 동안 무대를 홀로 지킨다. 그는 “초연 때에 비해 사랑에 빠진 20대 처녀보다는 할머니가 되어 길을 걷는 마지막 장면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며 “20년 전 의상을 그대로 입기 때문에 체중을 조절하고자 오후 6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1막의 아내 웃옷과 웨딩드레스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대로”라고 했다.
‘벽 속의 요정’은 손 연출가가 아내만을 위해 연출한 첫 작품이다. 연습실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한 손 연출가지만 ‘또롱이’(김 씨를 부르는 애칭)의 연기에는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이에 김 씨는 “20년간 단 한 번도 똑같이 연기한 적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연극에 있어서는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아내라고 봐주지 않는다. 나 역시 틀에 박히지 않으려 안달복달하다 보니 작품이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의 공연이 끝난 뒤 내년부터는 지방 순회공연이 이어진다. 창극과 마당놀이, 뮤지컬 등을 거치며 50여 년을 배우로 산 김 씨에게 이 작품은 더욱 뜻깊다.
“과분한 칭찬을 받아 온 작품인데, 20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과 멋진 관객을 만난 덕택임을 깨달았어요. 모름지기 배우라면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게 꿈이라지만 ‘벽 속의 요정’은 건강하게 몇 년간 더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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