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美 대선 본투표… 여성 표가 승부 가른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11. 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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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美 대선]
D-1… 보수적 백인 여성들 표심이 막판 최대 변수로
2016년 힐러리 때와 달리 이번엔 낙태권 옹호로 뭉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 그래픽=손민균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가 결과를 알기 어려운 혼전으로 빠져든 가운데 여성 유권자의 표심(票心)이 최종 결과를 판가름할 결정적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곱 경합주에서 모두 박빙의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여성, 그중에도 그동안 공화당·보수 성향이 강했던 백인 여성 유권자들의 최종 선택이 5일 미 대선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일 트럼프의 ‘텃밭’이라 여겨져 경합주엔 포함되지도 않은 아이오와에선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미 정가에선 해리스의 막판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오와 현지 매체 디모인레지스터가 지난달 28~31일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 8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해리스 지지율은 47%로 트럼프(44%)를 3%포인트 앞섰다. 지난 9월에 진행된 같은 조사에선 트럼프 지지율이 해리스보다 4%포인트 높았는데 판세가 뒤집혔다.

그래픽=김현국

공화당 강세인 아이오와에서 대선 직전 ‘해리스 우세’라는 뜻밖의 결과를 이끌어낸 이들은 여성이었다. 여성 응답자 중 해리스 지지율이 56%, 트럼프가 36%로 해리스가 20%포인트 앞섰다. 특히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힌 여성 중엔 해리스 지지율이 57%, 트럼프가 29%로 격차가 더 컸다. 남성의 경우 해리스 지지율이 38%, 트럼프가 52%로 여전히 트럼프가 우위였다.

트럼프가 1기 집권(2017~2021년) 때 다수를 임명한 보수 성향 연방대법원이 2022년 연방 차원의 낙태권 보장을 폐기한 후 많은 여성이 반발해 왔고, 낙태권은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로 굳어졌다. 이번 대선일에 애리조나·네바다 등 경합주 둘을 포함한 열 주가 낙태권 보장에 대한 주민 투표를 실시한다. 낙태권 후퇴에 반발하는 반(反)트럼프 여성 표가 얼마나 표출돼 해리스로 쏠릴지가 관건이다. 이미 낙태권 관련 주민 투표를 한 일곱 주는 모두 낙태권 옹호 쪽이 승리했다.

그래픽=박상훈

지난달 초부터 최근까지 공화당 후보 트럼프의 지지율이 경합주를 포함한 미 전역에서 골고루 상승하며 트럼프가 승기를 잡았다는 전망이 한때 우세했다. 그러나 선거가 막바지에 접어들며 민주당의 해리스가 지지율을 회복했다는 여론조사가 잇달아 발표돼 두 후보가 초접전 승부를 벌이는 구도로 되돌아갔다. 선거 결과를 좌우할 주요 경합주 판세 또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마지막까지 한쪽의 승부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여성 유권자들의 막바지 결집이 해리스에게 득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대선 때는 제조업 쇠퇴로 일자리가 위태해진 러스트벨트(쇠락한 중부 공업 지대)의 분노한 백인 남성이 트럼프 당선을 이끌었고, 2020년엔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확산으로 바이든에게 모인 흑인 표가 대선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면 이번엔 낙태권 후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여성들의 반트럼프 기조가 결과를 판가름할 결정타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공화당 강세로 분류됐던 아이오와에서까지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선다는 결과가 나오자 미 정가에선 대선 결과를 마지막까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민심이 민주·공화당을 오가며 ‘대선 풍향계’로 불려왔던 아이오와는 트럼프가 2016년 정치판에 등장한 이후 공화당 성향으로 기운 상태였다. 선거인단 여섯 명(전체 선거인단은 538명)이 걸린 아이오와에선 2016년 대선 때 9%포인트, 2020년엔 8%포인트 차이로 트럼프가 이겼다. 이런 아이오와의 대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에게 ‘깜짝 우세’를 안긴 세력이 여성 유권자로 드러나자 아직 부각되지 않은 여성층 ‘샤이(shy·수줍은) 해리스’가 더 있을지 모른다는 예상도 나온다. 백인 비율이 84%에 달하는 아이오와의 보수적 백인 여성들이 이번 대선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낙태권 이슈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이번만큼은 백인 여성들이 트럼프가 아닌 해리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백인 여성은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미국 내 가장 큰 인구 집단이다. 지난 대선 때는 53%가 트럼프를 찍었던 백인 여성은 최근(지난달 16~21일) 조사 때 트럼프 지지가 46%, 해리스가 43%로 격차가 좁혀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흑인 여성의 경우 이미 인도계 흑인 여성인 해리스에 대한 지지율이 90%를 넘기 때문에 백인 여성을 얼마나 더 끌어오는지가 해리스에겐 중요하다. 미 유명 배우이자 해리스 지지를 일찌감치 선언한 줄리아 로버츠는 지난달 말 영상 광고에서 “남편 몰래 해리스에게 표를 던지라”라고 설득했는데, 이 광고에 나온 등장인물 모두 백인 여성이었다. 해리스 진영이 백인 여성의 ‘변심’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대선을 앞둔 마지막 토요일인 2일, 수도 워싱턴 DC에선 수천 명이 모여 낙태권 옹호 및 해리스 지지 행진을 했다. 이들은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 우리의 투표’ 같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해리스 지지 유세를 했다. 해리스는 이날 남부 경합주인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유세에서 “트럼프는 여성들의 삶을 개선할 방법을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 유권자들을 위해 싸우겠다”며 여성 표심을 노린 발언을 집중적으로 내놨다. 트럼프는 이날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두 차례 유세했고, 그 사이에 민주당 우위 지역인 버지니아주 세일럼에서도 1시간 30분 동안 연설했다. 트럼프는 “약하고 어리석은 여성을 백악관에 앉혀 목숨을 잃고 싶은가” “무능하고 지능이 낮은 사람에게 막대한 권력을 주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없다”라며 해리스 공격에 집중했다.

머스탱 전투기 꼬리날개에 서명 -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합주를 찾았다. 2일 노스캐롤라이나 개스토니아의 공항에서 유세를 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스아메리칸 항공 P-51 머스탱 전투기 꼬리날개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편 경합주 판세는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트럼프는 얼마 전까지 주요 일곱 경합주 모두에서 상승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해리스가 최근 들어 러스트벨트(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에서 지지율을 빠르게 회복하면서 러스트벨트에선 해리스가, 남부 선벨트(일조량이 많은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조지아·애리조나·네바다)에선 트럼프가 약간씩 우위를 보이는 대선 초반의 구도로 돌아갔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와 함께 지난달 25~31일 일곱 경합주 등록 유권자 6600명을 조사해 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해리스는 러스트벨트 세 주에서 모두 트럼프를 3~4%포인트 앞섰다. 같은 날 발표된 여론조사 기관 마리스트 조사와 2일 나온 친공화당 성향의 라스무센리포트 조사도 해리스가 러스트벨트 지역에서 트럼프를 상대로 소폭 우위를 보였다. 지난달 초 이후 발표된 여론조사에선 러스트벨트조차 해리스가 트럼프에게 밀린다는 결과가 잇달았지만, 최근 들어 이 지역 표심이 다시 해리스 우세로 회복됐다는 신호가 나온 셈이다.

선벨트에선 트럼프가 해리스를 여전히 앞서고 있다. 2일 발표된 애틀라스인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애리조나와 네바다에서 해리스를 6%포인트, 조지아에선 2%포인트 앞섰다. 최근 여론조사를 종합해 평균 낸 뉴욕타임스 집계 결과로는 해리스·트럼프 두 후보가 일곱 경합주 모두에서 1%포인트 내외의 지지율 격차를 두고 경쟁 중이다. 여론조사 결과, 경제 지표, 현직 대통령 지지율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 이코노미스트의 대선 예측 모델에선 해리스 지지율이 52%, 트럼프가 48%로 나와 약 보름 만에 해리스가 우위를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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