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몰락의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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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더 흔하게 주변에서 듣고 보고 살필 수 있는 것이 실패와 몰락에 대한 이야기이다.
1866년 강원도 고성군수, 1867년 양양도호부사를 지낸 조병화의 둘째딸도 몰락으로 연결된다.
82세에 수전증을 앓으면서도 필체가 거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과 자존심을 보인 조씨가 노후에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결정타는 양자의 관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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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더 흔하게 주변에서 듣고 보고 살필 수 있는 것이 실패와 몰락에 대한 이야기이다. 1866년 강원도 고성군수, 1867년 양양도호부사를 지낸 조병화의 둘째딸도 몰락으로 연결된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 조씨(1836~1919 무렵)는 유복한 양반가에서 출생했으나, 노년엔 울화가 치밀고 서러움이 쌓여 끝내 지독한 화병을 얻어 죽음을 맞게된다.
조씨의 인생이 알려지게 된 것은 60~80대에 친가 조카 송교순에게 보낸 한글편지 18통을 분석한 ‘근대격동기 몰락 양반가 여성 양주조씨 노년의 삶과 화병’(문희순)이라는 논문을 통해서다. 조씨는 결혼한 지 5년만인 21세에 독자인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후 두 딸을 키우고 시부모를 모시며 남다른 생활력과 경제적 수완을 발휘했다. 돈과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400~500석지기 규모의 자산으로 불린 것이다. 수백석 추수하고도 정작 자신은 제대로 먹고 입지 않을 정도로 자산을 지키며 노후를 대비했다. 또한 친가의 남매들이 세상을 떠나게되자 부모 묘 이장과 제사 등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부지런하게 주관했다.
그런데 노후에 이전과는 비교가 어려운 먹구름이 끼었다. 대를 잇기 위해 들인 양자가 평생 일궈온 수백석 재산을 탕진해 70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끼니를 걱정할 비참한 처지로 바뀐 것이다. 편지엔 “빚쟁이들이 너무 많아 집안에 호랑이가 들어온 것 같고”라고 한탄했으며, 심지어 양아들을 향해서는 ‘당초에 없는 것만도 못한 성가신 자식’ ‘몹쓸놈’이라며 극심한 분노를 터뜨렸다.
82세에 수전증을 앓으면서도 필체가 거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과 자존심을 보인 조씨가 노후에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결정타는 양자의 관습이다. 양자 관습은 조선후기 사회체제를 견고하게 지탱한 불변의 진리처럼 여겼으나, 조씨가 살던 시기는 근대문물 유입기여서 다른 선택의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변화에 동떨어진 채 이에 휘둘린 조씨의 몰락은 놀라울 정도로 무기력했다. 시대와 사회가 전망하는 흐름을 정확히 읽지못하고 상황을 오판할 때 몰락의 징후는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회복 불가능지대로 귀결된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상황이든.
박미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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