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24. 폐광 후 실직한 광부의 삶

최현정 2024. 11. 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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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기록 구직 ‘주홍글씨’ 될까…아픈 몸 숨기는 젊은 노동자
장성광업소 폐광 후 416명 앞날 모색
산업재해 규정상 3년 이내 보상 신청
산재 기록 영향·새 일자리 걱정 앞서
재취업 훈련 등 지역 내 교육기관 부족
일자리 연계·이직 지원 기대감 무너져
태백에 마땅한 일자리 없어 지역 떠나
고용위기지역 지정 탈락·재도전 포기
고용노동부에 일자리 사업 건의 결정
시 “확실히 정해진 건 방향 설정 정도”
 태백시에 위치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현재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장성광업소 폐광 후 4개월이 흘렀다. 일자리를 잃은 416명의 근로자들은 현재 새로운 앞날을 모색하고 있다. 광산에서 일하다 생긴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을 신청하거나 앞둔 이들이 많지만, 아직 어린 자녀를 키워내야하는 40~50대 젊은 근로자들은 막막하기만 하다. 아픈 몸을 고치고 싶긴 하지만 산재 기록이 남게 되면 새 직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고, 3년 이내 신청해야하는 산재 규정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 고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서다.
 

■젊은 실직자들의 막막한 현실

김영문(47)씨는 12살, 7살의 어린 두 딸을 키우고 있다. 아내가 키즈카페를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6개월간 지급되는 실업급여 혜택이 끝나면 그동안 모아둔 돈과 아내가 버는 수익만으로 당장은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지하 막장에서 20년 넘게 채탄 일을 했기에 온몸이 성한 곳이 없어 산재 보상을 받아 아픈 몸을 고치고 싶지만, 당장 생계를 이어나가야하기에 걱정이 앞선다. 이 때문에 폐광 전부터 지게차와 대형버스, 고소대, 용접 등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자격증을 따놓았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지만 언제부터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김영문씨는 “얼마전 열 두군데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다 안좋다고 하더라”며 “사고도 여러번 겪어 아픈 몸을 고쳐야하는데, 그동안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니 문제”고 했다. 이어 “180만원 나오는 것으로 살아가기에는 택도 없으니 일을 하긴 해야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이만큼 산재보상을 받을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강현구(48)씨도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는 자녀가 둘에 막내가 중학생이라 막막한 건 마찬가지다. 폐광 전 지게차 교육을 받긴했지만 훈련을 받기만 한다고 해서 즉각 고용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태백에는 장성광업소만큼 월급을 줄 수 있는 마땅한 일자리도 없기에 걱정이 많다.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동안 재취업 훈련부터 받아볼까했지만, 얼마전 태백이 고용위기지역 지정에 탈락하면서 특별히 지원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보니 모두 알아서 살 길을 도모해야하는 처지다. 강현구씨는 “뭐라도 배워볼까 싶어 알아봤는데 태백에는 바리스타 교육밖에 없더라”며 “그나마 배울만한 건 동해, 삼척, 강릉까지 가야하는데 타지에서 한달 이상 숙박하며 배우는 것이 쉽지 않고, 배운다해도 그게 바로 고용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니 막막하다”고 했다.

신종철(47)씨는 슬하에 자녀는 없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그 역시 막장에서 일하며 사고로 생긴 후유증과 아픈 몸을 고치기 위해 산재를 신청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이후에는 동생이 운영하는 이벤트 회사에서 일을 할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확정된 건 아직 아무것도 없다. 신종철씨는 “무릎이 워낙 좋지 않아 의사들이 수술을 두 번하고 10년 뒤에는 인공관절을 넣으라고 해서 일반 직장에 다니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산재로 몸을 고치고 나면 이후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몸이 덜 아픈 친구들 중 몇 명은 장성광업소에 남아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월급이 기존보다 적고, 계약직이다보니 언제 그만둬야할 지 몰라 고민이 많은 것 같다”며 “10년 정도 하면 할 만하다 생각하는데, 1년하고 그만둬야하면 산재 신청하는 것보다 손해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태백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두고 장성광업소 근로자들이 지게차 운전 관련 직업 훈련 교육을 받았다.

■지역 떠나야 하나 고민하는 이유

이처럼 폐광 이후 일자리를 잃은 이들 모두가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지이다보니, 벌써부터 지역을 떠나거나 떠날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폐수처리장 등 장성광업소의 남은 시설을 유지, 보수하는 계약직 근로자, 시청 공무원 정도를 제외하면 이들이 지역에서 생계를 이어갈 만한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기석(59)씨는 “나같은 경우는 애들을 다 키워놓기도 했고, 여기가 고향도 아니고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보니 이곳에 미련이 없다”며 “산재로 아픈 몸을 고치고 나면 떠나고 싶다”고 했다.

신종철씨는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여기 있어서 떠날 것 같진 않지만, 벌써 떠난 친구들도 있다”며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이랑 살면서 병원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3번 정도만 여기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장성광업소 아파트 사택도 1년까지만 보장해주겠다고 하고, 이후에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데 그럼 나가야 하니까 그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강현구씨는 “처음 퇴직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광해광업공단 쪽으로 연계가 되거나 이직이 가능하다는 식의 말도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가버렸다”며 “그땐 그런 기대들을 했는데, 지금 현실은 아무 것도 없으니 떠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또 젊은 나이에 당장 내 몸을 찢고 수술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월급 350만원만 돼도 당장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텐데, 그 정도 주는 일자리가 없으니까 다들 산재에만 신경쓰고 있다”고 했다.

김영문씨는 “우리나라는 사람을 쓸 때는 개처럼 부려먹다가 다 끝나면 쓰레기처럼 정리해버리니 문제”라며 “우리랑 경동광업소까지 해도 천 명이 안 되는데, 그 인원들을 그대로 묵살한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어 “나라에서 운영하는 공단이면 다른 곳으로 연계해줄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안 해주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 산재 신청을 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도 확 줄어드니까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했다.

지하 막장서 20년 넘게 채탄한 전 장성광업소 근로자 김영문씨와 그의 딸 민서. 김영문씨 제공

■고용위기지역지정 탈락 이후

지난달 28일 강원도와 태백시, 삼척시는 회의를 통해 ‘고용위기지역 지정 재도전’은 실익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재도전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보다는 고용노동부 측에 기존에 추진하려던 일자리 사업을 건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고용위기지역지정에서 탈락됐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없다.

태백시 관계자는 “확실하게 정해진 건 추진 방향을 설정한 것 정도”라며 “고용위기지역 지정 신청 때 최우선으로 했던 일자리 대체 산업 육성을 위해 필요한 인력 양성 등에 관한 예산을 건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가 추진하는 사업들이 예타 심사나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가동이 된다고 예상하는 시점이 2026년~2027년 정도이기 때문에 그 전까지 지역을 지탱해줄 수 있는 힘과 대체 산업이 안착할 수 있는 데까지의 힘 두 가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려고 한다”고 했다.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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