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문화·예술] 까마득한 시간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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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템페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요즘에는 쉽게 배울 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템페라가 가지는 시간성은 이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오랜 채색 방식은 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만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제 팔레트 위에 놓인 까마득한 시간들을 보고 있으니 묘한 상상이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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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템페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계란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죠. 정확히는 다양한 안료들과 노른자를 섞어 그리는 방법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크릴, 유화물감 등보다 전부터 사용되어온 기법이죠. 요즘에는 쉽게 배울 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템페라가 가지는 시간성은 이날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다채로운 색을 내는 물감을 요즘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원하는 만큼 대량으로 구매할 수도 있죠. 하지만 화학 안료가 나오기 전까지 색을 쓰는 사람들은 모든 색을 자연에서 추출해냈습니다. 따라서 생산량도 제한적이었고, 때때로는 공기 중에 산화 시키거나, 바싹 말리는 등 다양한 기다림을 동반하기도 했습니다.
이 오랜 채색 방식은 재료를 가공하는 과정에만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 다이크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고동색은 이탄과 갈탄 지층에서 발견되는 흙으로, 보다 어두우며 따뜻한 갈색인 세피아는 오징어 먹물로 만드는데, 쥬라기 시기에 형성된 화석에서 색을 추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색 중에 하나인 울트라 마린은 그것의 원료가 되는 보석, 라피스 라줄리의 역사와 길을 함께 하고 있죠.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계곡에 대량 매장 되어 있어, 이곳에서만 약 6000년간 전세계에 대부분의 보석과 장식, 안료를 공급했습니다. 아름다운 빛에 반해 한정적인 생산량 덕분에 종교화나 높은 계층의 사람들을 위해서만 사용되는 귀한 색이었습니다. 템페라는 이처럼 다양한 색들이 가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이야기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입자도 냄새도 다른 색색의 고운 가루들. 오늘을 살고 있는 제 팔레트 위에 놓인 까마득한 시간들을 보고 있으니 묘한 상상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곳의 풍경과 이곳까지의 여정을 떠올렸죠. 다채로운 색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이야기들을 현대라는 시간으로 덮어가며 만들어내는 물감 반죽을 보니 숭고한 무언가를 다루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다양한 시간들을 엮어 화면 위에 형상을 빚어내니, 수많은 시간대의 이야기들을 현재라는 흐름 속에 재구성하는 저의 직업이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속에 등장하는 꿈 읽는 이처럼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를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늘 그것에서 멀어지는 방법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오직 놀이나 파티, 여행과 같이 비일상이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것들 뿐이라 여겼죠.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오히려 깊게 파고들 때 느낄 수 있는 감각들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고 문득 생각해봅니다.
■김수영 작가 △춘천고 △ 동국대 서양화 전공 △개인전 ‘오늘밤 이곳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단체전 ‘Room-은둔과 안온’, 에코아트페어, 춘천 ‘아르로드’ 등 참여
#시간들 #도민시론 #템페라 #사람들 #생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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