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43] 가을날
가을날
좋지 가을볕은
뽀뿌링 호청같이 깔깔하지.
가을볕은 차
젊은 나이에 혼자된 재종숙모 같지.
허전하고 한가하지.
빈 들 너머
버스는 달려가고 물방개처럼
추수 끝난 나락 대궁을 나는 뽁뽁 눌러 밟았네.
피는 먼지구름 위로
하늘빛은
고요
돌이킬 수 없었네
아무도 오지 않던 가을날.
-김사인(1956~)
가을볕의 감촉은 어떠한가. 시인은 까칠까칠하고 차다고 말한다. 가을볕은 마치 포플린으로 이불의 겉을 홑겹으로 짜서 씌운 듯해서 살갗에 닿으면 좀 거칠거칠하긴 해도 말쑥하고 시원한 느낌이 없지 않다. 가을볕은 차가우니 축축한 기운이 전혀 없다. 또 꽉 차 있지 않아 비어있는 것만 같으니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막막하고 적적한 느낌이 생겨나게 한다. 가을해가 내리쬐는 기운을 참 빼어나게 비유해서 표현했다.
빈 들판도 늦가을 것이다. 익은 곡식을 베고 거둔 자리에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저 옛날에는 낟알을 떨어낸, 탈곡한 볏짚을 무더기로 쌓아 뒀는데 요즘은 그런 동가리를 보기가 쉽지 않다. 빈 들판에도 머지않아 서리가 내리고 살얼음이 올 것이다. 고개를 들어서 보면 위로는 조용하고 텅 빈 하늘이 더없이 넓다. 시인의 산문에 “모과나무 너머 파란 하늘이 고요하고 귀합니다. 숨을 조용히 쉽니다. 손발의 힘도 빼고 가만히 있습니다”라고 쓴 대목이 있다. 꼭 그렇게 고즈넉함을 즐길 만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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