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아이돌 국감' 뒤에선
■ 국감과 '셀카'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15일 국회의사당.
유명 KPOP 그룹 뉴진스의 멤버인 하니 팜 씨가 나타났습니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업체인 하이브에서의 따돌림 의혹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니 팜/뉴진스 멤버] "제가 말 안 해도 팬분들이 제 마음 잘 아시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습니다."
출입문엔 팬과 취재진이 몰렸습니다.
심지어 환노위 소속이 아닌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사진을 찍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박정훈/국민의힘 의원] "뭐 가서 사진 찍고 그러는 건 이해가 되는데. 알았어요. 시간 보내"
[최민희/국회 과방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지금 무슨 얘기예요?"
오후 회의가 열리기 직전 환노위 국감장.
증인석에 앉은 한 남성이 미소를 지으며, 하니 씨와 사진을 찍습니다.
조선업체인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정인섭 사장입니다.
거제사업장에선 올해에만 5명의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정 사장이 증인으로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이김춘택/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 "저게 한화오션의 민낯이구나 그러니까 한화오션 경영자들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서 저런 태도를 갖고 있구나 그러니까 매우 참담했죠."
■ 외면당한 노동자
◀ 이휘준 ▶
다음으로 여전히 외면받고 있는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임상재 기자 나와있습니다.
방금 본 영상, 국회에서 환노위 국정감사가 열리던 날에 포착된 모습들이죠.
◀ 임상재 ▶
네, '아이돌' 따돌림 의혹 외에도 여러 노동 문제가 다뤄졌어야 하는 국정감사였는데요.
이날 주목받지 못했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취재했습니다.
◀ VCR ▶
정인섭 사장은 하니 씨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행동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정인섭/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 "네, 하니가 굉장히 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박홍배/더불어민주당 의원] "지금 좋은 일로 오신 게 아니잖아요. 그거 왜 웃으면서 셀카를 찍고 그럽니까?"
[정인섭/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 "네, 그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선 지난 1월 폭발사고로 2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같은달 잠수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도 목숨을 잃었고, 9월엔 컨테이너선에서 작업 중이던 40대 노동자가 32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이 외에도 온열 질환이 원인으로 의심되는 사망과 원인불명 익사 등 올해 들어서만 5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모두 하청노동자였습니다.
[이용우/더불어민주당 의원] "노동안전보건 조치들 결국은 원청이 책임지고 할 수밖에 없는 구조 맞습니까?"
[정인섭/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 "기본적으로는 안전에 대한 관리 책임은 협력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 저녁 한화오션은 "당사 임원의 적절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국민, 국회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환노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체 소속 일반 증인은 4명.
한화오션 정 사장 외에, 지난 2월 철제 구조물을 옮기던 60대 하청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HD현대중공업의 이상균 대표, 기본협약 미체결, 노조위원장 해고 등 노조 탄압 의혹을 받고 있는 레미콘 업계 1위 유진기업 최재호 부사장.
그리고 아이돌 멤버 따돌림 의혹이 불거진 하이브의 김주영 최고인사책임자가 출석했습니다.
<스트레이트>는 이들 기업 4곳에 대한 질의 시간을 분석했습니다.
실질적인 질의응답이 이뤄진 시간은 약 2시간.
절반인 1시간은 하이브와 뉴진스 사이의 따돌림 의혹에 할애됐습니다.
[안호영/국회 환노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이 자리에 계신 환노위 의원실에 가수 뉴진스 멤버들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해 달라는 국민들의 많은 요청이 있었습니다."
[하니 팜/뉴진스 멤버] "다른 선배님이든, 후배들이든 저와 같은 동기분들이든 지금 계신 연습생들도 이 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하이브 측을 증인으로 부른 의원은 1명인데, 질의에 나선 의원은 6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연예인의 경우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이 아니다 보니, 결국 형식적인 답변을 듣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주영/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 "저도 너무너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위원님 지적해 주신 것처럼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피고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한화오션 사망 사고와 관련된 질의응답에 소요된 시간은 47분.
사안과 무관해 보이는 질문과 답변도 오갔습니다.
[김위상/국민의힘 의원] "대표님 한화오션 요즘 수주가 많이 들어왔습니까?"
[정인섭/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 "예 수주는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어 HD현대중공업과 유진기업에 대해선 각각 의원 1명이 7분씩 질의를 한 게 전부였습니다.
[김태선/더불어민주당 의원] "현대중공업은 하청 노동자 비율이 60% 정도 되고 그리고 이주 노동자 비율도 한 15% 정도 되고 있는데 맞죠?"
[이상균/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 "네, 맞습니다."
[박해철/더불어민주당 의원] "노조위원장 상대로 각종 소송을 취하하고 원직으로 복직하는…"
[최재호/유진기업 부사장] "제가 결정할 사항은…"
[김종진/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사실은 우리가 다뤄야 될 중대재해나 노사관계나 임금 체불 문제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다. 국회에서 그러면 예술인 프리랜서를 개정하기 위한 하니법을 논의했다면 의미가 있는데 이런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과연 이번 국정감사 때 하니의 직장 내 괴롭힘 따돌림을 다룬 이유는 뭔가.."
뉴스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를 기준으로 이날 국감과 관련해 하니 씨나 하이브가 등장한 기사는 473건에 달했습니다.
한화오션을 다룬 기사는 1/9 수준인 51건.
그나마 '셀카'논란을 다룬 기사를 제외하면 9건으로 줄어듭니다.
HD현대중공업과 유진기업 관련 기사는 각각 두 건에 불과했습니다.
[김언경/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 소장] "환노위에서 다루었어야 마땅한 정말 중대재해라든가 노동과 관련된 핵심적인 이슈 이런 것들을 제대로 짚어주는 보도가 나왔어야 하는데 돌발 행동에 초점을 맞춘 보도들이 대부분이었다라는 것은 환노위 국정감사 자체를 그냥 스캔들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보도여서‥"
추락사고로 인한 작업중지명령이 해제된 다음 날,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의 모습입니다.
32m 높이의 공사 현장에서는 헐렁한 밧줄과 그물망이 그대로 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안전 난간이 무용지물이라고 말합니다.
[이김춘택/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 "그렇게 노동자들이 일할 때 사람이 죽는 사고가 났음에도 현장이 바뀌지 않는 거죠. 그러면 노동자들은 포기하거나 절망하게 되는,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화오션은 "추락사고 당시에도 관련 법 기준에 따라 안전시설을 갖추었고 사고 이후에는 시설을 개선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안전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데 3년간 약 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10일 환노위의 또 다른 국정감사.
쿠팡의 물류를 담당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정종철 대표와, 배송을 담당하는 쿠팡CLS 홍용준 대표가 출석했습니다.
이들은 잇따른 사망사고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홍용준/쿠팡CLS 대표] "이 자리를 빌어서 쿠팡과 관련된 업무를 하시다가 돌아가신 고인과 유가족분께 진심으로 애도의 말씀과 함께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작 유족들은 직접 사과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쿠팡 측은 "유가족분께 만나뵙기를 요청드렸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정금석/쿠팡 배송 노동자 고 정슬기 씨 아버지] "쿠팡이 전혀 변하지 않고 있고,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국가나 정부 기관이 아무것도 제어를 않고 있다. 그러면 국민은 어떻게 해야 되냐. 국가가 지켜주지 않으면 국민은 어떻게 하느냐."
■ 돌아온 건 보복?
◀ 이휘준 ▶
용기를 내서 열악한 노동환경 같은 회사 내의 문제를 외부에 알렸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잖아요.
◀ 임상재 ▶
내부고발, 사실 쉽지 않은 결심입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요.
내부고발에 나섰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 VCR ▶
지난 2월 MBC의 보도로 불거진 쿠팡의 블랙리스트 의혹.
[뉴스데스크(2월 13일)] "각종 암호로 표기된 이 파일엔, 쿠팡이 채용을 기피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빼곡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쿠팡 직원이었던 김준호 씨의 제보로 무려 1만 6천 명에 달하는 명단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근로기준법은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하는 걸 금지하고 있습니다.
[김준호/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블랙리스트 올리거나 아니면 회사 잘못인데도 그 사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리거나, 아니면 고용노동부 신고했다고 블랙리스트 올리거나 이런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거는 진짜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쿠팡 측은 보도를 한 MBC 기자들과 제보자 김 씨를 형사 고소했습니다.
"김 씨 등이 회사 인사자료 뿐만 아니라 최첨단 자동화장비 도면 등 수십 건의 영업비밀 자료를 무단 반출해 해외 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고소를 했다는 입장입니다.
경찰은 지난 7월 김 씨의 노트북과 휴대 전화를 압수했습니다.
[블랙리스트 제보자 압수수색 당시 영상 (7월 24일)] "<제일 핵심적인 게 지금 블랙리스트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진 건데, 왜 블랙리스트에 해당돼 있는 PNG 리스트는 (압수수색에서) 왜 빠져있어요?> 일단 여기 이 사건이 고소 사건이에요."
[경찰 (7월 24일)] "일단 이 사건이 고소 사건이에요."
쿠팡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근로기준법 위반과 부당 노동행위 혐의로 쿠팡을 형사 고발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도 촉구했습니다.
"특별근로감독 실시하라!"
그러나, 아직 쿠팡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거나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준호/쿠팡 '블랙리스트' 제보자] "압수수색 한 번도 없다가 공익 제보자 상대로만 압수수색을 한다? 이건 누가 봐도 편파 수사고 우리나라 노동부건 경찰이건 피해자에 대한 기관이 아니고 오히려 가해자를 위한 기관이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지난 5월, 경기 성남에 소재한 전자업체 노조가 1988년 이후 처음으로 파업을 하고 단체행동에 나섰지만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스트레이트>에 제보했습니다.
[스트레이트 (5월 26일)] "사측은 노조 전임자들에게는 원래 했던 설비 정비 업무가 아닌 청소 같은 다른 일을 맡겼습니다."
사측은 통상적인 업무 재배치일 뿐 노조에 대한 차별이나 탄압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런데 보도가 나간 후, 사측은 8초 분량의 영상에 기계 설비가 찍혀 영업비밀이 노출됐다는 논리로 노조 간부들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노조 위원장에게 정직 3개월, 사무국장에게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김경민/00전자 노조위원장] "마지막에 재심하는 자리에서도 물어보더라고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행동을 할 거냐. 다음에도 이런 경우가 또 발생이 되고 회사에서 바뀌지 않고 계속 이런 식으로 조합을 탄압하는 식으로 나온다고 그러면 다음에도 또 인터뷰에 응할 거고 적극적으로 알릴 거다 외부에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징계와 고소는 회사 시설물 촬영과 외부 유포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취업 및 복무 규칙을 위반해 이뤄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규칙 위반 행위에 대한 조치를 두고, 노조 활동 위축 의도라고 의문을 품는 이유와 구체적인 사례를 밝혀달라"고 했습니다.
노조간부들이 낸 부당정직 구제신청에 대해 최근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정직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같은 날 방송에서 한 아파트 공사 현장의 안전 불감증 문제를 지적했던 2명의 건설 노동자들.
[윤승재/건설 현장 노동자·건설노조 조합원 - 스트레이트 (5월 26일)] "'당장 위험한, 이렇게 시급한 위험 상황이 아닐 때는 사진을 올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올렸어요. 그 다음부터는 저희가 올리지 않았습니다.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올리지 마세요'라는 거는 누가 쓴 거예요?> 원청의 안전 매니저가 그렇게 올렸어요."
그리고 얼마 뒤, 퇴근길에 근로계약이 종료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박근태/건설 현장 노동자·건설노조 조합원] "'내일부터 출근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통보를 했습니다."
[윤승재/건설 현장 노동자·건설노조 조합원] "문자로 연락을 받았어요. 근로 계약이 종료됐다고 그렇게만 왔습니다."
통상 공사현장에선 3개월 계약을 기본으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 한 달씩 자연스럽게 계약이 연장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내부고발과 노조가입 때문에 업체 측에 눈엣가시가 된 걸로 느끼고 있습니다.
[박근태/건설 현장 노동자·건설노조 조합원] "다른 분들은 3개월을 다 자연스럽게 넘어서 다 지금도 근로하고 계시고요. <두 분이 계약이 종료가 되면서 (현장에) 노조원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네, 아무도 없습니다."
업체 측은 "공사현장은 상황에 따라 인력 수급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근로자들을 공사가 종료될 때까지 고용하지 않으며, 근로자들을 고용할 때도 공사 종료 시까지 고용한다고 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두 사람은 보복성 부당 해고라며 구제 신청을 냈지만, 지방노동위는 이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중앙과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구제해달라고 들어오는 신청은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만 5천 건을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부당해고로 인정되는 비율은 떨어지고 있고,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업체에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노동위원회 결정에 불복하는 사측이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김종진/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 "내가 이걸 이야기했을 때 불이익을 받는다라는 단순히 국가 권력만이 아니라 개별 조직에서 제보, 공익 제보를 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로 가는 것은 우리 사회가 되게 주춤하고 퇴보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사실로 보입니다."
임상재 기자(limsj@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652489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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