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굶어 죽고, 불법 도축돼도 모른다… 퇴역한 경주마의 최후
23마리 중 8마리가 사망한 채 발견돼
매년 1400여 마리의 경주마가 퇴역해
퇴역마 어떻게 '처리'됐는지 파악 불가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한창 열일 중인 라노를 누군가가 억지로 끌고 나가며 “너 말고 일할 사람 많아. 이제 후배들을 위해서 자리를 내줘야 해. 오늘부터 국제신문에서 일하지 말고 다른 일해!”라고 다그치면 굉장히 당황스럽겠지요. 고작 몇 년 일한 게 다인데 억지로 은퇴하게 한 뒤, 라노를 필요로 하는 곳에 취직시켜 준다면서 노루 뿔 판매 같은 일을 하게 만들면 억울하고 분통터질 것입니다. 라노가 상상하던 미래와 은퇴 후 삶이 있는데, 그걸 망가뜨린 거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경주마’들에게는 이런 삶이 강요되고 있습니다.
최근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어느 축사에서 말 23마리가 방치돼 그중 8마리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두 달을 버려두다시피 한 탓에 말 사체가 뼈까지 드러난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살아남은 15마리도 갈비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한 데다 몸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 오물과 사체들 속에 던저져 있었습니다. 문제의 축사를 운영한 마주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는데요. 해당 마주는 지난해 말을 불법 도살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2022년에는 퇴역 경주마를 포함한 말 4마리를 방치해 2마리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합니다.
마주는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할 말들을 어디선가 데려와 축사에 가둬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처리가 곤란한 말들을 돈을 받고 데려왔을 겁니다. 어떤 말들은 도축된 뒤 건강원에 팔리거나 개 사료가 됐겠죠. 말을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법이 없기 때문에 마주는 말들을 계속해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설령 아무도 없는 곳에 버려져 죽임을 당하더라도요.
그렇다면 말들은 왜 ‘처리’당해야 할까요. 어린 나이에 인간으로부터의 ‘쓰임’을 다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는 매년 2000여 마리의 말이 경주용으로 태어나고, 1400여 마리의 경주마가 퇴역합니다. 말의 평균 수명은 25~30년 정도입니다. 국내 경주마의 활동 기간은 2, 3년 정도로 대부분 5세 전후의 어린 나이에 은퇴하게 되는데요. 경주마로서의 삶은 짧고, 퇴역마로서의 삶은 깁니다. 약 20년을 퇴역마로 살아가야 하죠.
경주마는 끊임없이 생산됩니다. 이미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죠. 경주마의 성과를 최우선으로 두는 국내 경마산업에서 무리한 경기로 인해 잦은 부상을 당하기도 하는 기존의 경주마들을 ‘기다려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말들은 매년 나오니까요. 경주마의 교체 주기는 빨라지고, 이는 과도한 생산으로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잉여말과 퇴역마가 발생하게 되는 것.
퇴역마의 운명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40~50%는 도축 당하고, 운 좋게 살아남으면 승용, 번식용, 말이용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게 됩니다. 마차도 끌고, 영화나 드라마에도 출연합니다. 그렇다고 목숨이 보장되진 않습니다. 머지않아 헐값에 팔려 도축되기도 하죠. ‘데드라인’을 잠시 미뤄뒀을 뿐, 살아남은 말들의 말로도 비슷합니다. 모든 퇴역마들이 목장에서 여유롭게 풀이나 뜯으며 여생을 보내면 좋으련만. 은퇴 후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말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동물자유연대 정진아 사회변화팀장은 경주마의 이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력제를 의무화를 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 보니 충남 공주 같은 축사로 퇴역마들이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경주마 시절에는 이력이 정확하게 집계가 되는데 은퇴를 한 뒤에는 말 소유주의 의지에 달려있고 강제성이 없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퇴역마가 어느 시설로 가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폐사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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