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집배원 3대 이야기 [연극 우정만리 리뷰]
국립국장 하늘극장서 막 내려
할아버지에서 손녀로 이어진
우편배달부 3대 이야기
역사가 삶에 남긴 흔적
거대한 시대와 울음
이대영 작가의 3부작 연극 '우정만리'는 '눈물'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가 관통해나간 사건들을 개인의 이야기로 가져온다. 우편집배원 소시민의 이야기는 역사와 맞물려 거대한 시대적 울음이 된다. 근현대사 폭풍 속 대한민국 100년을 헤쳐나간 역사가 우편집배원 3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10월 우편집배원 3대 이야기를 담은 연극 '우정만리'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024-2025 레퍼토리 시즌'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3부작으로 기획한 연극 '우정만리' 중 첫번째 이야기인 이번 공연은 초기 우편배달부인 '벙거지꾼' 김계동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극은 대를 이어 체신국 관리자가 된 계동의 아들 '수혁'과 우편집배원이 된 계동의 손녀 '혜주'의 시선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100여 년의 이야기를 펼친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집배원 혜주는 우편물 배송을 마친 후 가방 속에서 오래된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발신인에 할아버지 함자 김계동, 수신인에 아버지 함자 김수혁이 기재된 편지다. 의아한 마음에 주소지로 찾아가 보지만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극의 시간은 1930년 과거로 돌아간다. 20살의 수혁은 벙거지꾼인 아버지 계동의 권유로 체신이원양성소에 다니고 있다. 수혁은 일제 치하의 삼엄한 시대 속, 양성소에서 쫓겨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우편 관리 현장에 나간다.
그러면서 벙거지꾼으로서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계동이 수혁에게 쓴 장난 섞인 암호 편지 한 통이 독립군의 작전 암호편지라는 오해를 받아 순사들에게 끌려가 큰 고초를 겪고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이야기는 1930년과 2000년대를 관통해나가며 각각의 집배원들이 옮기는 사연과 자신들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작가 이대영은 "아주 평범한 한 가정의 삶을 통해 사랑과 결혼, 독립운동과 해방, 한국전쟁에 따른 동족상잔의 비극, 종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접한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역사로만 치부됐던 거대한 시대는 한 개인의 이야기로 불리는 순간 극으로서 생명을 가진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2장에서는 전쟁터에서 고생했던 주인공이 끝내 전선에서 사망한다. 같은 날 독일군 사령부는 '서부전선 새 소식 없음'이란 기록을 남기며 소설은 끝난다. 개인의 삶이 역사적 기록에선 어떻게 삭제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반대로 우정만리는 각 시대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상흔을 남기고 지나가는지 그려나간다.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다가온 이들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때론 아프다.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한다. 우리 삶의 눈물이 그러하듯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역사적인 것이 된다.
벙거지꾼 김계동 역은 관록의 배우 이일섭이 맡았다. 독립군 대장 역으로 배우 정운봉, 국밥집 주인 역으로 배우 권혁풍, 교장 역으로 배우 강성해, 계동의 아내 이순례 역으로 배우 한록수, 수사관 역으로 배우 이계영이 출연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인다. 또한 계동의 아들이자 체신관리자인 김수혁 역에 배우 최우성, 수혁의 딸이자 집배원인 김혜주 역에 배우 류진현이 출연했다.
공연의 제작을 맡은 예기씨어터컴퍼니는 1999년 경기도 부천에서 극단 열무로 창단한 이래 올해로 창단 25주년을 맞은 극단이다. 2015년 하우고개에 얽힌 이야기 '하우하우'로 경기도 연극제 대상과 전국 연극제 금상을 받은 바 있다. 연극 '옥상 위 달빛이 머무는 자리' '아저씨는 외계인' '유성우 내리는 밤에' '손님' 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지역극단이다.
편지가 계속되는 한 우정만리는 다시 우리 곁을 찾을 것이다. 눈물은 멈췄다가도 참을 수 없을 때 터져 나온다. 다음 우정만리를 기대한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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