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尹, 국정과제 법안 과반 처리... 관건은 4대 개혁 미진, 시행령 의존[尹 임기 반환점]
입법 목표 54.3% 완료... 주요 법안은 국회 발목
굵직한 법안들은 '참사' 등 계기 여론에 힘입어
하위법령 최초 목표 초과 달성... '모래성' 비판도
임기 절반을 앞둔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 설정한 '국정과제 법률 계획' 489건 중 절반 이상을 마무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극단적 여야 갈등 탓에 '4대 개혁(노동·의료·연금·교육)'과 저출생 등 윤 정부를 관통하는 핵심 정책은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부는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하위법령 개정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정책적 측면에서 성공한 정부로 남기 위해서는 핵심 정책의 입법화에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느냐가 남은 임기 동안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입법 계획 절반 달성... 핵심 법안 국회에 '꽁꽁'
3일 한국일보가 법제처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윤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22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2년 4개월 동안 총 266건의 국정과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정부가 임기 내 입법 완료를 목표로 삼은 489건의 국정과제 법률 중 54.3%가 완료된 셈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5년 임기 동안 76.8%(489건 중 376건)의 국정과제 법률 계획 이행률을 달성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척률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6대 국정목표' 분야별로는 △경제(87건) △사회(86건) △미래(49건) △정치행정(32건) △외교안보(9건) △지방시대(3건) 순으로 통과 법률이 많았다.
다만 정부 내에서 이런 수치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정부가 내세운 '중점 과제' 법안들이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해 국회에 꽁꽁 묶여 있기 때문이다. 국정기조의 가장 큰 뼈대인 '연금·의료·교육·노동' 4대 개혁부터 발목이 잡혀 있다. 21대 국회에서 무산된 연금개혁은 최근 '정부 단일안'을 내놓았지만, 야당의 부정적 반응에 첫발도 못 떼고 있다. 교육개혁의 핵심인 늘봄학교 확대과 유보통합의 본격 시행을 위해서도 근거 법령 정비가 절실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노동개혁 역시 핵심 과제인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야당과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고준위 방사선 폐기물 처분시설 특별법(고준위법·원자력 생태계 강화) △세법(금융투자소득세, 상속세 등·자본시장 혁신) △정부조직법(인구전략기획부 신설·저출생 대응) △조세특례제한법(K칩스법·반도체 등 미래전략산업 초격차 확보) 등 정부가 통과를 희망하는 국정과제 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3일 "이념과 갈등을 떠나 국가적 이익을 바라보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입법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육아 여건을 개선하는 '모성보호 3법',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 '전세사기피해자특별법'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여야가 국정과제 법안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일은 거의 없고, 사회적 참사 등을 계기로 여론에 떠밀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정과제 법률 통과 명단 중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다중운집인파사고 대응) △자연재해대책법(지하공간 침수 대책) △교권보호 4법(교원 지위 향상) 등 굵직한 법안들은 각각 2022년 서울 용산 이태원 참사, 지난해 충북 청주 오송지하차도 참사와 서울 서초동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급물살을 탄 법안들이다.
하위법령으로 눈 돌린 정부... "본질 개혁 아냐"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하위법령 개정'에 의존하고 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상위법으로부터 위임받은 범위 안에서 대통령이나 각 부처 장관이 국회 동의 없이 내용 변경이 가능한 점을 활용한 전략이다. 법제처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출범 당시 국정과제 하위법령 계획으로 총 223건을 설정했다. 2년 반 동안 목표 건수는 총 288건까지 늘어났는데, 지난달 기준 이 중 250건(86.8%)이 완료됐다. 하위법령 계획이 임기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초과 달성'된 셈인다.
이같은 기조는 남은 임기 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도 최근 참모들에게 "대통령령(시행령)으로 빠르게 바꿀 수 있는 건 바꾸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통과가 어려운 국회를 꼭 거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은 입법 대신 시행령을 고치는 방향으로 고려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위법령 개정은 결국 상위법을 완전히 대체할 순 없는 만큼 지속가능성이 낮다.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국정 지지율 20%대가 처음으로 붕괴된 상황에서, '시행령 일방통행'이 지속되면 독선과 불통의 이미지도 공고해질 우려가 크다.
이와 관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입법화되지 않은 제도나 정책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기에 시행령 활용은 결국 본질적 개혁이 아니라 '모래성'에 가깝다"며 "이런 상황에선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도 '입법은 우리 권한'이라는 분점 정부식 마인드나 완력 정치는 내려놓고 정책 추진 기회를 주려는 쪽으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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