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눈과 정신’의 정상화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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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며 언론의 본분을 다해야 할 국제신문 기자들이 취재 현장이 아닌 거리에서 "국제신문 매각"을 외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부산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를 같이한 '부산의 정신' 국제신문의 회생은 지역 발전과 맞닿아 있다.
예전 부산의 명성을 되찾으려면 국제신문이 지난 77년간 보여줬던 열정을 더 발휘해야 한다.
불의에 맞서고 시대 흐름을 선도하며 '부산의 정신'을 알린 국제신문의 DNA는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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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며 언론의 본분을 다해야 할 국제신문 기자들이 취재 현장이 아닌 거리에서 “국제신문 매각”을 외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한 줄의 기사,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기자들이 자기 회사를 매각하라고 대주주인 능인선원에 요구하고 있다. 국제신문 사원들은 지난 몇 년간 임금과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참지 못한 사원들은 지난달 27일 서울 능인선원 앞에서 “사원 주도로 국제신문 매각 추진을 위해 총력 투쟁하겠다”고 결의했다.
77년을 이어온 국제신문은 유진오 주요한 이병주 등 당대의 문호가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1970년대에는 국내 5대 일간지이자 지방지의 대표 신문으로 성장했다. 신문은 독재정권의 불의와 탄압에 맞서면서도 필봉을 꺾지 않았다. 국제신문이 5공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된 뒤 9년 만인 1989년 복간호를 낼 수 있었던 건 자유와 민주의 파수꾼이었던 언론이 있어야 한다는 시민의 마음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국제신문은 편집국과 취재 차량에 국내 최초로 무선 이동국을 설치하고, 지방지 최초로 AP통신의 사진 수신 장비를 설치하며 앞서나갔다. 6·25전쟁 때 군(軍)이 국제신문을 통해 전황을 파악한 것도 신속·정확을 위해 애썼던 신문사 구성원의 노력 덕분이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의 실황 보도는 민주화의 새 여정을 열었다.
국제신문은 2004년 부산과학기술협의회를 발족해 부산의 과학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국립부산과학관 유치 100만 명 서명운동과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유치를 위한 여론 조성 및 지역 의료 발전에도 앞장섰다.
부산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를 같이한 ‘부산의 정신’ 국제신문의 회생은 지역 발전과 맞닿아 있다. 예전 부산의 명성을 되찾으려면 국제신문이 지난 77년간 보여줬던 열정을 더 발휘해야 한다. 부산시민의 정서를 대변하고 미래를 제시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을 ‘부산의 눈’으로 알리는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
불의에 맞서고 시대 흐름을 선도하며 ‘부산의 정신’을 알린 국제신문의 DNA는 반드시 보존돼야 한다. 330만 부산시민은 염원한다. 국제신문은 다시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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