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독립영화 배급사의 카페 운영보고

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2024. 11. 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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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송이 씨네소파 대표

굿모닝! 하고 마주 보기도 전에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매일 카페의 하루를 열어주시는 단골 할아버지가 있다. 날씨에 따라 아이스 두 잔 혹은 따뜻한 거 두 잔. 카페를 오픈한 후로,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걸음 하시는 할아버지는 오늘은 손님이 얼마나 있는지 체크한다고 카페를 한번 쓱 둘러보시고는 할머니와 드실 커피를 꼭 두 잔 사서 가신다. 그리고 저녁께면 와서 늘 같은 커피와 쿠키를 사 가는 과묵한 청년도 있고, 늘 같은 자리에서 공부를 하다 가는 사람도, 술에 잔뜩 취해서 해장 커피를 얌전히 마시고 가는 아저씨도 있다.

더 이야기해 볼까. 사람이 많아 좁은 자리에 앉아 불편할 텐데도 카페가 잘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며 웃는 사람도 있고, 산책하다가 열린 문으로 카운터 앞의 우리를 보고 주인보다 먼저 뛰어오려는 강아지들도 있고, 카운터에 있는 나를 보고 저 멀리서 걸어오면서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면서 커피 두 잔을 주문하는 손님도 있다. 아직 카페를 연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을 같이 쌓아준 사람들이 있다. 자주 안 보이면 걱정되는 사람들이 있다.

카페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운 일 중 하나는 손님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주문을 받고 커피를 건네는 동안 오가는 표정과 목소리 사이로 마음이 오가는 것이 느껴져 좋다. 물론 오랫동안 영화를 배급하다 보면 얼굴을 아는 관객들이 생기게도 되지만, 영화업 종사자에게 관객(손님)은 대부분 숫자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9월 25일에 개봉한 ‘마녀들의 카니발’은 843명의 관객이 보았다. 영화 데이터를 관리하는 영화진흥위원회 통합 전산망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이다. 거기서 우리가 실제로 얼굴을 아는 관객은,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GV 행사나 시사회에서 만난 극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관객이 데이터로 느껴지는 이 감각은 백만, 천만 명의 관객을 만나는 상업 영화의 경우에는 아마 더 심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숫자로만 접했던 영화의 관객들도 사실은 이렇게나 다양한 얼굴과 목소리가 있는 사람들이었겠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카페) 손님과 (영화) 관객을 동시에 만나면서, 밸런스가 맞다고나 할까.

그리고 또 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가장 크게 깨달은 점 중 하나는 몸이 정말 피로하다는 것이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머리와 키보드만 쓰는 일을 하다가 전신을 쓰는 일을 함께 하니 온몸이 피곤하다. 요즘 우리 일상은, 아침에 카페 오픈 준비를 하고 2층 사무실로 올라와, 11월 20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 채’의 감독이나 배우에게 메일을 보내고 극장 프로그래머나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리다가, 가끔 반가운 손님이 오면 2층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이 칼럼 쓰기만큼 어려운 영화 보도자료를 쓰다가 잠깐 틈이 나면 후다닥 1층으로 뛰어 내려가서 커피를 만든다. 뇌만 잔뜩 쓰고 몸을 안 움직여서 피곤하지만 말똥말똥한 밤을 보내기 일쑤였다면, 이제 나는 밤을 의식할 새도 없이 잠에 빠져든다. 그래서 밸런스가 맞다고나 할까.

그렇게 쉼 없이 일하느라 오늘이 주말인지 평일인지 헷갈리는 나날이 벌써 한 달째. 독립영화를 계속 배급하고 싶어 돈을 벌자고 시작한 일이니까 아마 다음 달부터는 결국 돈을 벌긴 해야겠지만, 당장은 그냥 보면 기분 좋은 사람들이 생겼고 엄청 피로한 몸이 남았다. 그래서 다음 달엔 우리도 적절히 휴식할 방법을 찾아내야겠지만, 어쩐지 쉼과 여유는 단골손님의 얼굴과 목소리 사이로, ‘한 채’의 개봉 극장 확보 소식 사이로, 커피의 고소한 냄새와 주방 안의 웃음소리 사이로 인기척 없이 찾아오기도 했다. 독립영화를 배급하며 커피를 팔아온 이번 한 달은 그랬다.


커피는 신맛, 고소한 맛, 쓴맛 등이 모두 조화롭게 느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맛있는 커피는 밸런스가 좋다. 서툰 우유 스팀 실력으로 아직까지도 누누이 라테 아트를 망치고 있기도 하지만, 카페에 오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배급하며 언제나 좋은 영화를 제대로 잘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같은 평화로움이 있었다. 기분 좋은 슬픔이 행복에 배어있다. 고단함 속에 풍요가 있다. 밸런스가 좋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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