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오세진 기자 2024. 11. 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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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내전 피해자 오피라 오코트 “기후위기가 폭력·분쟁도 악화시켜…84%가 기후위기 취약국 출신인 난민 헤아려야 비로소 기후정의”
기후활동가인 오피라 오코트가 2024년 10월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겨레21과 만나 기후위기로 인한 난민촌 변화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누군가에게 기후위기는 일상생활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빨대 사용을 줄이는 계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승용차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는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기후위기를 당장 덥고 추운 문제로만 여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누군가에겐 당장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28살 청년 오피라 오코트에게 기후위기가 그렇다. 목숨이 달린 일이다.

2017년 우간다로 탈출해 농사, 가뭄으로 죽을 고비

오코트는 남수단 내전의 피해자다. 2011년 7월 수단에서 분리 독립한 남수단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2년 뒤인 2013년 12월 정부와 반정부세력의 분쟁이 발생했고, 유전 지대를 둘러싼 민족 간 분쟁까지 더해지며 상황은 악화했다. 2018년 4월 기준으로 약 40만 명의 사망을 초래한 내전은 2020년 2월 끝났지만, 갈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오코트는 2017년 내전을 피해 며칠 동안 맨발로 뛰고 걷고를 반복하며 남수단과 국경을 맞댄 우간다로 탈출했다.

우간다 북부 지역에 있는 팔라벡 난민촌에 도착했다. 30㎡ 크기(약 9평)의 땅을 받았다. 우간다 원주민이 농사짓는 땅만큼 비옥하진 않았다. 깨끗한 식수를 얻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오코트가 삶을 재건할 기회의 땅이었다. 옥수수와 콩, 고구마를 심었고, 길쭉한 고구마처럼 생긴 카사바(아열대 식량 작물)를 재배했다. 또 인근 숲에서 나무를 구해 집을 지었다. 요리에 필요한 땔감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농작물 걱정을 크게 할 일이 없었고, 집이 손상돼도 재료 걱정 없이 쉽게 고칠 수 있었어요. 그 당시엔 나무도 풀도 아주 많았거든요.”

위기가 찾아온 건 2~3년 뒤부터다. 비가 오는 날이 줄었다. 강수량이 줄면서 농작물이 말라 죽는 일이 많아졌다. “옥수수를 키우는 데 3개월 정도 걸려요. 그런데 비는 안 오고 내리쬐는 햇볕이 너무 뜨겁다보니 수확하기도 전에 옥수수가 다 말라 죽어요.”

난민촌 주변에 사는 우간다 원주민들도 가뭄 피해를 입었다. 식량이 부족해진 원주민들의 분노는 난민들을 향했다. ‘우리가 굶주리는 이유는 난민들 때문’이라고 여겼다. 난민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나무를 숲에서 가져가는 것도 막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의 어느 날 오후. 오코트는 숲에서 건축자재를 모으고 있었다. 남성 4명이 갑자기 나타났다. 크고 넓은 날이 있는 칼과 도끼,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이곳에 다시 오면 우간다에 온 걸 후회하게 해주지. 그땐 널 죽이겠다.”

남성들이 거칠게 위협하며 오코트를 폭행했다. 그가 우간다에 와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오코트는 살기 위해 모았던 자재들을 두고 도망쳐야 했다. “저한테만 일어난 일이 아니에요. 난민촌에 사는 많은 남성이 겪는 일이에요. 특히 난민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는 심각했어요. 땔감을 구하러 숲에 가면 원주민 남성들에게 두들겨 맞거나 강간을 당했어요.”

기후활동가 오피라 오코트가 만든 단체 ‘더 리즈’가 우간다 북부지역에 있는 팔라벡 난민촌에서 청소년들에게 나무를 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오피라 오코트 제공

환경교육∙나무심기 활동 “작은 행동이 큰 효과”

당시 죽을 뻔했던 경험은 오코트가 각성하는 계기였다. “갈등과 죽음이 총을 겨누는 전쟁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도 생계를 위협받는 긴장 속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을 부추긴 것이 기후위기였다. 기후위기가 폭력과 분쟁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한 오코트는 기후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뒤로 오코트는 난민촌에서 환경 교육을 하고 있다. 팔라벡 난민촌에 사는 아이들에게 나무를 심고 키우는 방법, 생활하면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나무의 훼손을 줄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난민촌 주변에 심은 나무가 많게는 2만5천 그루에 달한다고 한다.

2020년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있는 데지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한 오코트는 난민 동료들과 함께 ‘더 리즈’(The Leads)를 만들었다. 환경 보호와 평화 구축, 인권 신장 활동을 목표로 하는 단체다. 오코트가 난민 어린이들에게 나무 심기를 장려하는 교육 제공뿐만 아니라 그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고, 숯을 덜 사용하는 진흙 난로를 만드는 방법을 알리는 일이 더 리즈가 하는 활동이다. “작은 행동이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오코트가 늘 강조하는 말이다.

매년 전세계가 모여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를 연다. 참가국들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을 결의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탄소 배출량에서 흡수량을 뺀 순배출량을 ‘0’으로 함)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2030년 안에 기후위기 주범인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나는 전환을 가속해야 한다는 것이 2023년 제28차 총회(COP28)에서 도출된 합의문 내용이다.

전세계 난민과 난민 신청자의 84%가 남수단을 비롯해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등 기후위기에 매우 취약한 15개국 출신이라고 한다.(유엔난민기구, 2020년 기준) 그럼에도 전세계의 기후위기 대응 논의에서 난민은 빠져 있다.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지역사회, 그 지역 안에서 더욱 고통받는 난민을 헤아리지 않는 기후정의는 결코 정의라 할 수 없어요. 기후위기 때문에 누군가는 홍수로 집을 잃고, 누군가는 가뭄으로 인한 식량 부족으로 굶주리고 있어요. 누군가는 죽고 있고요. 지금 우리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현실이에요. (기후위기에) 책임 있는 국가, 기업, 개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말을 하고 싶어요. 여러분도 기후위기에서 절대 도망갈 수 없습니다.”

기후활동가인 오피라 오코트가 2024년 10월1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겨레21과 만나 기후위기로 인한 난민촌 변화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화석연료 포기 않는 선진국, 행동 보여줘야 할 때

인류는 화석연료를 태워 지구 온도를 상승시켰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세계기상기구(WMO)는 2024~2028년 적어도 한 해 동안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일시적으로 1.5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80%라고 전망했다. 기후위기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데도 선진국들은 화석연료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2023년 1월부터 2024년 7월까지 국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32억달러(약 4조4천억원)를 투자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조금을 화석연료에 지급하는 나라다. 2022년 기준 보조금 액수가 2조2천억달러(약 3035조원)에 이른다. 한국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00억달러(약 13조8천억원)가 넘는 공적 금융을 화석연료에 투자했다.

“이제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줄 때입니다.” 오코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긴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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