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e스토리] 페이커 자리의 다섯 번째 별

박상진 2024. 11. 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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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박상진 기자] "페이커라는 별자리의 다섯 번째 보이지 않았던 별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2022년 스프링 이후 젠지는 T1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23년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MSI 이후 T1은 젠지를 한 차례도 이기지 못하며 10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그리고 이날 T1이 드디어 열한 번째 도전 끝에 젠지를 이기고 결승에 오르자 파리 현장에서 중계하던 성승헌 캐스터는 페이커와 T1의 5회 우승 도전을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결승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팀은 BLG였다. 상대 전적 3대 3. MSI에서 유독 T1에 강했고 T1의 승리 플랜에 중요 퍼즐인 제우스를 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수인 탑 라이너 빈이 버티고 있는 팀이었다. 그리고 T1은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로 BLG를 격파하고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T1의 역사는 페이커의 역사와 같다. 성승헌 캐스터의 이야기대로 페이커의 다섯 번째 별은 T1의 다섯 번째 별이다. 2013년 첫 우승에 이어 첫 번째 전성기인 2015-16 두 시즌 연속 우승. 그리고 2017년 준우승 이후 다시는 오르지 못할 것만 같았던 결승에서 한 번 무너지고 난 이후 선수 생활에서 연이 없었던 한국에서의 월즈에서 우승한 2023년, 그리고 다시 이루지 못할 2연속 우승을 이뤄낸 영국 런던까지 페이커와 T1은 함께 이뤘다.
2017년 준우승 이후 눈물을 보였던 페이커는 2018년 최악의 시즌을 보냈고, 2019년 다시 가능성을 봤지만 이후 주전 경쟁과 팔목 부상 같은 일로 다시 월즈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페이커는 이 시기 항상 자신의 목표를 월즈 우승이라고 이야기하며 계속 도전했고 결국 과거 전성기라고 불렸던 시기와 똑같은 성과를 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페이커의 모습에 e스포츠 팬들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영감과 동기, 그리고 용기를 얻는다. e스포츠가 스포츠가 될 수 있냐는,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를 향한 비꼼 섞인 질문에 페이커가 답한 "승부를 가리기 위해 연습하고 경기하는 모습에서 보는 사람들이 영감을 얻을 수 있다면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의 말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페이커라는 인물 덕분에 이스포츠는 게임 대회를 넘어 스포츠로, 그리고 게임과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영감과 동기와 용기를 주는 문화가 됐다. 그렇다면 다섯 번째 우승을 차지한 페이커는 자신을 보고 영감을 받고 동기와 용기를 얻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T1과 페이커의 다섯 번째 우승 순간에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의미있을지 고민한 끝에 나는 페이커 자리의 다섯 번째 별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빛을 전해줄 지, 그 이야기를 묻고 들어보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이스포츠를 취재한 2015년 이후 페이커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재미없는 정답을 말하더라도 대답에 시간이 걸리는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페이커는 내가 던진 질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질문자 연단에서 바라봤을 때 페이커가 감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됐다.

하지만 페이커는 내가 아는 그대로 자신이 자신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모습을 보였다. 페이커는 15초 정도의 정적 후 아래와 같이 답했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제가 팬들에게 주는 영향입니다. 저를 보고 많은 사람이 힘을 얻고 좋은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오늘 경기도 열심히 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정말 페이커다운 답이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영향력에 관해 장황하게 설명했으면, 페이커답지도 않고 메시지에 큰 울림도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한 마디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페이커는 생각 끝에 자신이 열심히 하는 모습, 그리고 다섯 번째 우승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하겠다는 단순하지만 확고한 메시지를 세계로 전했다.

젠지전 승리로 자신의 별자리의 다섯 번째 별의 가능성을 알린 페이커는 이번 우승으로 자신의 별자리에 별을 하나 더 추가했다. 그리고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많은 사람에게 페이커라는 별자리는 폭풍 속에서라도 길을 잃고 흔들리지 않는 목표가 될 것이다.

첫 번째 별로 자신을, 두 번째 별로 팀을, 세 번째 별로 영웅의 탄생을, 네 번째 별로 불굴의 의지를 보인 페이커 자리는 다섯 번째 별로 세상 누구나 바라보고 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렸다. 그리고 다섯 번째 별이 보내는 빛은 화려하지 않아도 누구나 믿을 수 있는 확고한 빛이다.
 

사진 일부=라이엇 게임즈
박상진 vallen@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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