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을 모르는 권력과 가자지구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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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은 완전한 해방을 위해 모든 억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사 좌파적 견해, 또는 반대로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해 일정 수준의 억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보수적 견해로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관점에 따르면 중요한 대립쌍은 해방 대 억압이 아니라 수치심을 모르는 뻔뻔함 대 존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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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정신분석학은 완전한 해방을 위해 모든 억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사 좌파적 견해, 또는 반대로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해 일정 수준의 억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보수적 견해로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관점에 따르면 중요한 대립쌍은 해방 대 억압이 아니라 수치심을 모르는 뻔뻔함 대 존엄함이다. 이는 현대의 정치적 갈등을 분석하는 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수치심을 모르는 권력의 예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노골적으로 뻔뻔한 인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강력한 사례 하나는 가자지구의 한 장면이다. 한쪽에서는 이스라엘군 폭탄에 의해 건물들이 파괴되고, 한쪽에서는 바로 그 폭탄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미국의 구호품이 공중에서 떨어진다. 지난달 이렇게 투하된 구호품에 맞아 세살배기 팔레스타인 소년이 즉사했다. 소년의 할아버지는 “우리는 원조보다 존엄을 원한다. 우리가 받는 모욕은 이제 충분하다”고 탄식했다.
지난 7월에는 이스라엘의 장관과 의원들이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예비군들이 팔레스타인 포로들의 항문에 쇠막대기를 삽입하는 고문을 자행한 것을 공공연하게 옹호했다. “하마스 테러리스트를 고문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예비군을 체포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우리는 그들을 고문하는 것을 이스라엘 국가의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마스나 헤즈볼라, 또는 러시아가 같은 짓을 한 뒤 이를 자랑스럽게 떠든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었을까?
이스라엘군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예비군 엘리란 미즈라히는 징집되어 가자지구에서 부상당했거나 사망한 팔레스타인 수백명을 군용 불도저로 밟고 지나가는 경험을 하고 돌아온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군 심리 전문가는 “외상을 입은 군인들이 계속 살아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은 그들의 경험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일깨워줄 수 있도록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저지른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이런 식의 ‘치료’는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범죄를 정상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유대인을 가스실로 밀어 넣은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의 경험을 ‘정상화’하도록 돕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떠한 수치심도 모르는 이들이다.
수치심의 자리는 어디일까? 라캉은 프랑스 68혁명 당시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혁명가로서 여러분은 은밀하게 주인을 열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그들에게 수치심이 결여되어 있으며 “너무 많은 수치심이 아닌 적절한 수준의 수치심을 견지할 때, 억압을 없애려다 더 나쁜 형태의 억압을 불러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라캉의 말은 변화된 자본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과거의 자본주의가 향락을 억압하는 데 의존하는 자본주의였다면, 현재의 자본주의는 어떤 행위를 금지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관대함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다.
라캉은 여기서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해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억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억압적 탈승화’라고 부르는 것에 주목한다. 오늘날에는 도착이 일반화되면서 과거에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공공연하게 행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도착 속에서 무의식이 가장 억압된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자기모순적이기 때문에 프로이트가 말하는 ‘근본적 억압’의 영향 아래 놓인다. 따라서 관대함은 교착 상태를 초래하고 결국 권위적인 새로운 주인에 대한 요구를 증가시킨다. 요즘 새로운 포퓰리스트 권력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 보여주듯 이 주인들은 수치심을 모른다. 구좌파 시위대가 수치심을 모르던 정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으로 말이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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