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가 다시 와도 두렵지 않은 이유[윤홍우의 워싱턴24시]
FTA 개정한 트럼프···2기에도 충격 예상되나
"한국의 체급 8년전과 달라졌다" 목소리도
美中 경쟁 최전선 AI 등서 韓기업 절대적 필요
트럼프 핍박속 美 시장장악한 韓세탁기 신화
“‘팀 엔비디아’ 없이 미국이 미중 인공지능(AI)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최근 미 워싱턴DC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트럼프 시대’가 다시 닥쳤을 때 한국의 생존 전략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팀 엔비디아’는 글로벌 AI 반도체 대전의 승자인 엔비디아와 TSMC·SK하이닉스를 일컫는 말이다. AI가 미중 전쟁의 최전선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더라도 한국 반도체 기업 없이는 미국이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미 대선을 불과 하루 앞두고 전 세계는 ‘트럼프 리스크’에 떨고 있다. 선거 막판까지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트럼프의 지지율은 초박빙이다. 지난 두 번의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보이지 않던 트럼프의 ‘숨은 표’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초박빙 판세는 트럼프에게 불리하다고 보기 어렵다. 워싱턴DC의 각국 공관과 뉴욕 월가는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비중 있게 보고 후폭풍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당선은 한국 경제에도 메가톤급 충격을 미칠 수 있다. 그의 재임 1기 대표적 경제 성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이며 백악관 재입성 시 보편적 기본 관세(10~20%) 부과, 전기차 보조금 축소, 반도체 관세 부과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하나같이 한국 기업들에는 예민하고 대응하기 고통스러운 이슈들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대미 무역 흑자 신기록을 쓰고 있는 한국은 ‘무역 적자’에 몸서리치는 트럼프와 그의 경제 참모들에게 1순위 저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8년 전 트럼프를 처음 마주한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체급이 다르다”는 목소리가 미국 안에서 들려온다. 무엇보다 미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미국의 무역과 공급망에서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미국 입장에서 8년 전과 달리 중국의 위협이 굉장히 절박한 상황까지 다다랐다”면서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공급망과 제조업 부흥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년의 특파원 임기 동안 현장에서 가장 절실히 느낀 점도 우리 기업들의 괄목할 만한 위상 변화였다. ‘제조업 부활’을 내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 반도체를 언급한 것은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다. 노골적인 ‘미국산’ 우대 조항을 넣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두 자릿수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한화는 미국의 필리조선소 인수를 진행 중인데 중장기적으로 미 해군의 역량 강화에 힘을 보태려 하고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핍박을 견뎌내고 미국 시장을 점령한 LG와 삼성의 ‘세탁기 신화’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2017년 LG와 삼성을 견제하려는 미 가전 기업 월풀의 청원을 받아들여 세탁기 세이프가드 조치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미국 공장 건설을 앞당기고 현지 생산 물량을 늘리는 등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해 “세이프가드 조치로 미국 세탁기 산업의 생산량 및 점유율이 높아졌으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 기업이 아닌 미국에서 생산을 시작한 한국 기업 두 곳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2기’가 우리나라에 엄청난 리스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의 이익은 곧 미국의 이익’이라는 논리로 무장해 민관이 적극 대응하고 미국이 스스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쟁력을 갖춘다면 누가 미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한민국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쟁을 벌이는 미국은 한국이 더욱 필요하고 이러한 상황은 트럼프가 와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미 정치권 인사의 발언은 한국의 대미 전략에 있어 곱씹어볼 대목이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seoulbird@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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