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어봅시다] 예산정국 앞두고도 여전히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
與, 이재명 사법 리스크 거론
AI 산업 활성화 등 법안 뒷전
여야가 677조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 심사를 앞두고도 정쟁만 일삼고 있다.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김건희 여사 특검을 중심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거론하며 맞서고 있다. 예산 역시 '김건희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이 대치하는 모양새다. 정쟁 속에 정작 중요한 민생 및 지역 현안 예산은 뒷전으로 미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국회에서 '국정감사 총평 및 11월 국회 운영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은 11월을 '김건희 특검의 달'로 삼겠다"고 밝혔다. 국회 의결만으로도 출범시킬 수 있는 상설 특검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면서 "명태균 씨를 비롯한 관련 녹취 자료도 많이 있다"며 "윤 대통령이 사는 길은 '김건희 특검' 수용밖에 없다"며 촉구했다.
특검의 내용과 형식과 관련된 협의도 열어두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과 명 씨의 '김영선 공천개입 논란' 관련 통화 녹음이 공개된 상황에서, 특검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찬성을 유도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채 해명 사망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탄핵 추진에는 신중론을 고수했다. 박 원내대표는 "많은 분들이 녹취 내용을 근거로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의혹을) 탄핵 사유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다만 저희가 지도부이기에 (탄핵 관련 부분은) 답변 드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탄핵을 앞장서 추진할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다만 조국혁신당은 탄핵 이슈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혁신당은 이달 중 탄핵소추안을 공개할 예정"이라며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을 수 없는 헌법과 법률 위반 사항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언급한 윤 대통령의 탄핵 소추 사유는 잘못된 과거사 인식과 이로 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부정, 김 여사의 불법과 비리에 대한 묵인·방조 등 17가지에 달한다. 특히 혁신당은 최근 민주당이 공개한 통화 녹취 등이 매우 중대한 탄핵 사유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결정 발표가 이뤄진 날이 대통령 임기 시작 이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탄핵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재 민심의 탄핵 요구가 너무 높아 민주당도 결국 탄핵에 발을 담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거론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야당의 2일 장외 집회에 대해 "이 대표의 1심이 다가오자 당대표 방탄에 당력을 쏟아붓는 모습이 애처롭다"며 민주당을 가리켜 "더불어방탄당"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여론전으로 검찰과 사법부 압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거대 과반의석의 원내 1당이 거리로 나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해선 "정말 반헌법적인,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악법"이라며 "이런 형태의 악법은 저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검에 대한 당론 반대 여부에 대해선 "당론 추진 문제는 우리 의원들의 총의를 기초로 정해야 된다"며 말을 아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을 입증하는 녹취가 많다고 한 부분을 놓고는 "입수한 게 있으면 빨리 공개하라. 이게 무슨 49부작 드라마도 아니고 흥행을 겨냥해서 할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 지지율 20% 붕괴와 각종 논란에 대한 부부의 사과 요구에 대해선 "여러 의견을 듣겠다"며 몸을 낮췄다.
예산 심사 방향을 둘러싸고도 날 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서민 복지, 미래 먹거리를 위한 반도체 관련 정책 과제와 지역 균형 발전 사업 등의 예산 증액을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시도할 지역화폐 추가 발행 관련 사업을 '이재명표 포퓰리즘 예산'으로 규정하고, 증액을 차단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김 여사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예산을 삭감 1순위에 올렸다. 특히 7900억원으로 편성된 마음 건강 지원사업과 3500억원이 책정된 개 식용 종식 관련 예산의 경우 김 여사가 관심을 기울인 '김건희표 예산'으로 보고 전액 삭감할 태세다.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예산에 대해서도 '칼질'을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민주당이 '민생·공통공약 추진 협의기구'를 통해 처리하기로 한 인공지능(AI) 산업 활성화, 국가전력망 확충,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저출생·고령화 대책 등과 관련한 법안과 예산이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지적된다. 이들 정책들은 예산과 맞물려 있다. 올해 역시 예산안 처리가 법정 기한(12월 2일)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역구 의원 입장에선 지역 숙원사업 예산도 올려야 하는 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하다 "고 말했다.
김세희·한기호·전혜인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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