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와 밸류업 기업의 길을 묻다] "ESG 공시, 빠를수록 좋다… 글로벌 규제 대응 지원 필요"

김남석 2024. 11. 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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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신뢰성 있는 제도 정비전까지 단계적 확대 입장
비재무지표 등 ESG경영 평가요소 표준 가이드 필요
기관투자자, 장기적관점서 가치 제고 전략 요구해야

⑩ 좌담회 - ESG평가기관 분야 전문가에 묻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친환경 경영에 힘쓰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ESG경영'이 강조된 지도 십여년이 흘렀다. 기업들이 저마다 나름의 ESG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또 최근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밸류업'이 떠오르면서 자본이익률, 주주환원율 등 재무지표들이 각광받고 있는 상황에 비재무지표 성격이 짙은 ESG를 어떻게 기업가치 중 하나로 평가할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디지털타임스는 'ESG와 밸류업 기업의 길을 묻다' 포럼을 앞두고 학계와 기업, 기관투자자, ESG평가기관 분야의 전문가 5명에게 우리나라 ESG경영의 현 주소와 ESG와 밸류업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고문현 한국ESG학회장(숭실대 교수),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부회장,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와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2곳의 ESG투자 담당자가 각 분야에서 바라본 ESG와 밸류업에 대해 답했다. 자산운용사는 투자기관 특성상 익명으로 질의에 답했다.

현재 글로벌 ESG 트렌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모두 'ESG 공시'라고 답했다. 다만 ESG 공시 도입 시기가 지연된 것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정우용 부회장은 "현재 글로벌 ESG 트렌드, 특히 최근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높은 부분은 국제적 흐름에 맞게 ESG 정보가 자발적 공시에서 규제 공시로 전환되는 부분"이라며 "정부는 국내 기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기업은 정보이용자인 투자자를 고려하며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정부는 기업들이 ESG 공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단계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3자의 검증과 국제 정합성에 맞는 공시 기준 등 신뢰성 있는 공시 제도가 충분히 정비되기 이전에는 자발적 공시 체제로 가면서, 제도 정비 여건에 맞게 단계적으로 규제 공시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반면 류영재 대표는 "이미 유럽연합은 내년, 미국은 2026년, 심지어 중국도 2026년부터 기후 공시를 중심으로 한 ESG정보공개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는 입장인데, 한국 정부는 당초 2025년 도입 예정이었던 계획을 2026년 이후로 미뤘다"며 "그때 가서 시행시기를 판단하겠다는 것은데, 이는 오히려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을 키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험날짜는 알려주지 않은 채 시험 과목과 시험범위만 알려주면 수험생들은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덧붙였다.

기관 투자자에서도 ESG공시를 빠르게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A운용사 담당자는 "이미 해외 주요 시장에서 ESG 정보 공개가 의무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국내 도입 시기를 늦추기는 힘들 것"이라며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글로벌 ESG 정보 공시 규제 대응과 국내 기업의 ESG 공시 역량 강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ESG공시가 '가급적 빨리 의무화돼야 한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컨센서스라고 강조했다. 또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지를 보여주는 로드맵을 확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국민연금도 공식석상에서 ESG 공시 의무화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한 바 있다"며 "ESG 공시 의무화가 늦어질수록 국내 자본시장과 기업의 중장기 경쟁력은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의 밸류업 정책과 관련해 ESG경영을 객관화하고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기업가치제고계획에 ESG경영 관련 지표가 포함될 경우 비재무지표를 어떻게 바라볼 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고문현 교수는 "ESG 성과는 쉽게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표준을 참고해 일관된 기준을 설정하고 제3의 인증기관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기업은 ESG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고, 투자자와 이해관계자들이 공시된 비재무지표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기업 가치와 관계 없는 요소가 정치적 판단에 따라 포함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기업의 리스크 측면에서 단기, 중기,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 및 전환 리스크는 무엇인지, 산업군이나 주제별로 표준 가이드를 제시하고 기업들이 이를 토대로 비교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자발적 공시 기준으로 많이 활용됐던 GRI 이니셔티브도 산업별 기준이 여전히 제정 중인 것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 비재무지표를 비교 가능하게 객관하하는 것은 어렵고, 단계적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고 답했다.

기업이 ESG경영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해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기관투자자는 투자를 통해 ESG 우수 기업의 자본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경영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인데 원래 ESG경영은 ESG투자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기업의 혈액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금을 넣어 주는 주체이자 핵심 이해관계자인 투자자가 피투자기업의 ESG성과를 평가해 투자하다 보니 기업들이 그 ESG성과 지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전제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ESG경영을 잘하면 자본비용을 낮출 수 있는 결정적인 유인책이 되는 만큼 ESG경영을 언급하기 전 국내 ESG투자 시장이 얼마나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관 투자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ESG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정 부회장은 "ESG경영은 기본적으로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의 관념을 전제하고 있다"며 "투자도 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바라봐야 ESG경영에 대한 기관투자자의 요구도 타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B자산운용 담당자도 "ESG경영을 위해 수익성을 희생하는 회사는 매우 드물고, 그런 회사가 ESG 투자에서 반드시 선호되지도 않는다"며 "지속가능한 기업은 장기적으로 성장과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인 만큼 기관투자자가 실질적인 스튜어드십 이행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영전략을 요구하면, 기업은 ESG 경영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국내 기업의 ESG경영에 대한 평가도 들어봤다. 고 교수는 "국내 기업의 ESG경영은 지난 몇 년간 빠르게 발전해 왔지만, 여전히 여러 도전 과제와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며 "ESG는 이제 단순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아직 이 목표를 체계적으로 달성하는 데 있어 부족한 점이 많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 부문에서는 탄소배출 감축과 재생 에너지 도입과 같은 가시적인 진전이 있었지만 기업의 내부 문화와 경영 철학으로 깊이 자리잡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단순한 홍보와 외부 지표 충족을 넘어 환경 보호와 사회적 책임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받아들이는 내재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반면 정 부회장은 "현재 국내 기업의 ESG경영이 미흡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ESG경영을 위해서는 많은 자본과 인력,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하고 여력이 있는 주요기업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ESG공시 관련 명확한 지침이 부재하고, ESG경영이 기업 실체에 주는 실익이 부족한 점도 고쳐나가야 할 점으로 꼽았다. 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기후공시규칙에 면책 조항을 둔 것처럼 기업들이 투자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투자자 시각으로 바라본 A자산운용 담당자는 "지난 몇 년간 국내 기업의 ESG경영 관련 정보 공시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만 동시에 ESG경영을 여전히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해외 주요 시장에서 그린워싱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외형만 갖춘 기업과 실천하는 기업을 구분하고 실제로 지속가능한 기업에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남석·신하연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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