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떨어지고 슴슴한 내 삶도 다큐가 되나요?

최예린 기자 2024. 11. 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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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를 열심히 키우다 보니까 나이만 잔뜩 먹었더라고요. 돌아보니 텔레비전이나 이런 데 나오는 봉사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뭣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내 가족만 위해서 산 인생으로 남고 싶지 않았거든요."

박씨는 이날 "로뎀나무 아래처럼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와서 쉴 수 있는 그런 공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하는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볼 기회라 생각해서 다큐 촬영을 허락했는데, 남이 보지 않는 구석에서 궂은일을 해오신 다른 봉사자들 영상을 보니 부끄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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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호(67)씨의 인생다큐 ‘나의 봉사일지’ 한 장면. 인생다큐 유튜브 갈무리

“삼남매를 열심히 키우다 보니까 나이만 잔뜩 먹었더라고요. 돌아보니 텔레비전이나 이런 데 나오는 봉사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뭣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내 가족만 위해서 산 인생으로 남고 싶지 않았거든요.”

윤순호(67)씨는 낯선 카메라 앞에 앉아 어떻게 봉사를 시작하게 됐는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윤씨는 한국자유총연맹 유성지회 소속으로 10년째 이웃돕기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봉사하며 가장 행복했던 일’에 대해 “항상 즐거웠다. 특히 감자 심고 키워서 나눠 줄 때 참 보람 있고 좋았다”고 했다. 그는 4층 건물에 살던 한 할머니를 떠올렸다. “무릎이 안 좋아서 기어서만 생활하는 분이었다. 음식을 싸 들고 가곤 했는데, 손녀가 왔다고 해 한참 만에 갔더니 돌아가셨더라. 많이 아쉬웠다. 그분 소원이 (1층에) 내려가서 사람들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거였다”며 목소리가 떨렸다.

최근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인생 다큐멘터리 ‘나의 봉사일지’ 상영회에서 윤씨는 스크린 속 자신의 얼굴이 어색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함께 무대로 나온 박경복(65)씨는 스스로 봉사일지의 제목을 ‘로뎀나무 아래’라고 지었다. 박씨는 ‘손길발길’이라는 마을 동아리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본인이 개발한 ‘힐링 테라피 프로그램’으로 소외된 이웃의 마음 다독이는 재능 기부다. 박씨는 이날 “로뎀나무 아래처럼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와서 쉴 수 있는 그런 공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하는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를 돌아볼 기회라 생각해서 다큐 촬영을 허락했는데, 남이 보지 않는 구석에서 궂은일을 해오신 다른 봉사자들 영상을 보니 부끄럽다”고 말했다.

지난달 3일 열린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나의 봉사일지 상영회’에서 윤순호씨(가운데)와 박경복씨(오른쪽)가 윤대진 하이든든 대표의 진행으로 자신의 ‘인생 다큐’를 본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나의 봉사일지’는 유성구와 유성구 지역공동체지원센터, 유성구자원봉사센터가 지원해 콘텐츠 제작사인 ‘하이든든’이 만든 ‘인생 다큐멘터리(다큐)’ 시리즈다. 유성구 마을공동체 활성화 사업의 하나인 프로젝트로, 지난해엔 어르신 11명의 영상 자서전을 제작했다.

올해는 윤순호·박경복씨뿐 아니라 김명선·김유숙·도임순·박윤희·박현선·윤순호·전금숙·정현숙씨 등 9명의 봉사자가 다큐의 주인공이 됐다. 봉사자들을 카메라 앞에 앉혀두고 12개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유성구자원봉사센터가 촬영한 인터뷰와 출연자에게 받은 사진 자료를 편집해 5∼6분짜리 영상 9개를 만들었다. 영상들은 유튜브 채널 ‘인생다큐’에서 볼 수 있다.

영상을 만든 윤대진 하이든든 대표는 “미리 질문지를 보내고 한번 생각해보고 오시라고 하니 많이들 답변을 써오셨다. 출연자들 대부분 이번 참에 내 인생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을 갖고 오셨는데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인터뷰가 순조로웠다”고 했다.

상영회 끝머리에 최현진 유성구자원봉사센터장은 “흔히들 자기 돈과 시간을 내서 하는 봉사를 가성비 떨어지는 행위라고 여긴다. 영상 속 주인공들은 덥고 추운 데서 고생하면서도 봉사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그것이 봉사자들이 찾은 가성비 같다. 내가 행복하고 그것이 전염되고 내가 만난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행복하고, 그런 것이 그들의 가성비고 힘”이라며 “‘나의 봉사일지’가 빛나는 몇명의 영상을 넘어서 봉사가 지역으로 확산되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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