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의 김판곤, ‘울산 왕조’ 완성했다
시작은 불안했다. 4월 이동경 입대, 6월 설영우 유럽 진출 등으로 전력에 누수가 생겼고, 7월 설상가상 홍명보 감독이 축구 대표팀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울산HD의 리그 3연패는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우승을 두 번이나 경험한 감독의 부재는 팀에 악재로 작용할 게 뻔했다. 실제로 홍 감독이 떠난 뒤 울산은 내리 지면서 올해 가장 낮은 4위로 추락했다. 7월 말부터 지휘봉을 잡은 김판곤 감독은 “꼭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실망하는 팬들을 보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불안함은 오히려 ‘하나의 팀’을 만드는 동력이 됐다. “나를 믿고 따르는 선수들을 보며 힘을 얻었다”는 김 감독은 흔들리는 선수들을 껴안으며 지난 1일 3연패를 완성했다. 울산은 1일 임시 안방인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4 파이널A 36라운드 안방 경기에서 강원FC를 2-1로 꺾었다. 승점 68점을 쌓은 울산은 2위 강원과의 승점차를 7점으로 벌리면서 남은 2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했다. 2022년부터 3연패이자, 1996년과 2005년을 포함해 울산의 K리그 통산 5번째 우승이다. K리그에서 3연패는 성남FC의 전신인 성남 일화(1993~1995년·2001~2003년)와 전북 현대(2017~2021년·5연패)에 이어 울산이 세 번째다.
의지와 끈기, 팀워크가 만든 승리였다. 김 감독 부임 때 4위였던 울산은 8월25일 광주FC전을 시작으로 3연승에 성공하며 질주했고, 선두에 올라선 뒤 이를 저돌적인 공격과 수비로 끝까지 지켜냈다. 김판곤 감독은 “4위로 시작해 선두에 오른 뒤 이를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했다. 주민규는 “축구는 팀이 하는 스포츠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전임 (홍명보) 감독이 팀을 워낙 잘 만들어놔서 손댈 부분이 많지 않았다”며 3연패의 공을 다른 곳에 돌렸다. 그러나 부임 3개월여 만에 흔들리는 팀을 다잡아 우승으로 이끈 데는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서 오랫동안 활약해온 그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쳤다. 김 감독이 K리그1 감독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감독은 스타 선수 없는 홍콩과 말레이시아 팀을 오랫동안 이끌면서 개인보다 팀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좋은 팀이 된다는 생각을 울산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이청용, 조현우 등 베테랑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벤치 멤버들에게도 꾸준히 기회를 주며 팀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렸다. 이번 시즌 울산에 합류한 고승범은 김 감독 체제에서 주로 주전으로 뛰며 시즌 3골 3도움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김 감독은 "전술적으로 이대로 가야 할지, 내 색깔을 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내 색깔대로 가겠다고 결단할 때는 힘들었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다른 경기 접근 방식으로 혼란스러웠을 텐데, 의심에서 시작해 확신과 흥미를 가져주는 과정이 행복했다”고 했다.
동기 부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판곤 감독에게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출전은 열정과 용기를 갖게 했다. 김 감독은 “내년 클럽 월드컵을 참가하는 것이 큰 동기 부여가 됐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도 중요했다”고 했다.
김 감독 개인에게는 울산에서 선수(1996년)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했다는 의미가 있다. K리그 역사상 소속팀이 다른 사례를 포함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한 것은 5명뿐이다. 26년의 지도자 생활을 돌아보면 “지하 10층에서 시작한 것 같다”는 그는 지도자 생활 중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다.
트로피 수여식은 23일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리는 수원FC와의 시즌 최종 38라운드 경기에서 개최된다.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기 전에 울산은 5일 말레이시아 조호르 술탄 이브라힘 경기장에서 조호르 다룰 탁짐(말레이시아)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 리그 스테이지 4차전 방문 경기를 치른다.
한편, K리그2에서는 FC안양이 우승을 확정하면서 K리그1 승격에 성공했다. FC안양을 창단 11년 만에 승격으로 이끈 유병훈 감독은 “(갑상샘)암 투병 중인 부인에게 기쁨을 돌려주고 싶다”며 흐느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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