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쉿 직업’과 6411의 목소리 [열린편집위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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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달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20주년을 맞아 노선 개편을 포함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에 앞서 한겨레는 52년간 경기 의정부~서울 종로를 잇던 106번 버스가 노선 조정으로 사라진 사안을 다루었다.
이것은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말한 '불쉿 직업' 현상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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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경영기획실장
서울시는 지난달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20주년을 맞아 노선 개편을 포함한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그에 앞서 한겨레는 52년간 경기 의정부~서울 종로를 잇던 106번 버스가 노선 조정으로 사라진 사안을 다루었다. 동행취재 기사를 읽고 나니 매일 새벽 4시 첫차에 올라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고단함과 당황스러움이 여실히 느껴졌다. 서울시가 다음날 여러 데이터를 동원해 낸 해명자료를 보았지만, 기사를 통해 생생한 이미지를 갖게 된 나는 설득되지 않았다.
손쉬운 수치적 합리성과 그 뒤에 숨은 성장 기회에 편승하려는 결정이 쌓여 지금의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현상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누구나 어느 수준 이상 삶의 질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켜주려는 관점이 더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한겨레의 ‘6411의 목소리’ 코너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알 수 있고, 읽다 보면 작은 반전과 함께 기대하지 않은 재미를 주기도 한다. 경력단절 여성 약국 보조원, 학교 보안관, 봉제 소상공인 부부, 물류업 종사자, 마루 노동자 등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누군가와 맑은 대화를 깊이 있게 나누었을 때 갖게 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중에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계산도 작동한다. 불안정고용 노동자들은 보통 사회적 갈등이나 재난 기사에 집단으로 등장하는데, 이 코너에서는 개인의 이야기가 일상성의 맥락 위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신선하다.
6411의 목소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말한 ‘불쉿 직업’ 현상과 대비된다. 그레이버는 현대 사회에서 유급 고용직이지만 자기 일이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며 심지어 해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일에서 스스로가 원인이 되지 못할 때, 감내할 만한 가치가 없는 고통을 받을 때, 자신이 해를 끼치고 있음을 알 때 비참함을 느끼고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무의미한 불쉿 직업과 그저 힘든 직업을 구분해서 후자를 ‘쉿 직업’이라고 칭했는데, 쉿 직업 종사자들은 힘들게 일해야 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과소평가되거나 무례함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유용한 일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6411의 목소리에는 자신들의 일이 쓸모없다는 기색이 없다. 다만 스스로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과, 그렇기에 수시로 마주치는 부당함을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삶을 지키려는 태도가 드러날 뿐이다. 동시에 수없이 등장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자신들이 일상에서 돌보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도 쉽게 발견된다. 그레이버는 불쉿 직업을 가진 이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인간이 가진 원초적 즐거움인 “세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능력”을 제약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삶은 서로를 인간으로 창조하는 과정이고, 사람은 동료들의 돌봄과 지원으로 하나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6411의 목소리를 감싸는 힘과 유쾌함은 타인의 삶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 아닐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한다는 자신감의 상실은 공동의 미래를 그리는 데 큰 제약이 된다. 앞으로도 한겨레가 현장성 있는 취재와 좋은 기획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내고 연결해줄 것을 기대한다.
※‘열린편집위원의 눈’은 열린편집위원 7명이 번갈아 쓰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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