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 청구서를 말할 시간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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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막 넘어온 참이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에 제공된 기후 금융은 지난 20년을 통틀어 170여억달러에 그쳤고, 그마저도 85%가 대출금 형태였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가스를 수입할 수 없게 되자 여기저기 손을 벌렸는데 아제르바이잔도 그중 하나다.
'유럽의 가스 수요가 5~10년 뒤엔 지금보다 줄 게 분명한데, 당장 급하다는 유럽 말만 믿고 무턱대고 투자를 받았다가 나중에 빚만 떠안는 것 아닐까?'라는 게 아제르바이잔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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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막 넘어온 참이다. 조만간 바쿠에서 열릴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기후 총회)의 사전 취재를 위해서다.
카자흐스탄부터 아제르바이잔에 이르는 중앙아시아·코카서스 지역엔 지리적 공통점이 있는데 ‘진짜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대신 두개의 ‘가짜 바다’ 카스피해와 아랄해가 있다.
이 두 바다(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호수)에는 기후변화와 정의로운 전환, 그리고 돈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었으니, 먼저 아랄해부터 보자.
아랄해는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다. 강이란 무릇 좁은 개울물에서 시작해 시냇물, 큰 강물을 거쳐 바다에 이르는 법. 그러나 이런 상식을 갖고 이 강들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당황스러운 장면을 보게 된다. 강줄기는 하류로 갈수록 실처럼 가늘어지고, 아무다리야강은 급기야 아랄해에 닿기 전 중앙아시아 사막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강 주변에 광활하게 펼쳐진 농경지 때문이다. 옛 소련은 여기서 집중적으로 면화를 길렀는데 면화는 유독 물을 많이 먹는지라 가뜩이나 물이 귀한 이 일대 물을 스펀지처럼 끌어간다. 이렇게 재배된 면화는 중국, 방글라데시 등으로 수출된 다음 글로벌 의류 공급망을 거쳐 지금 나와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이 된다.
한때 호수 면적 순위 4위를 자랑했던 아랄해의 면적이 10분의 1로 쪼그라든 또 다른 이유는 강이 발원하는 빙하가 점점 줄어서다.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지역의 강은 빙하에서 시작하는데 기후변화로 빙하가 줄고, 일부는 사라진 탓에 강에 흐르는 물 자체가 줄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전혀 다른 이유로 에너지 전환을 고민하는 나라도 있다. 타지키스탄은 전력의 92%를 수력(재생에너지)에서 얻는 ‘에너지 전환 완성형 국가’다. 그런데도 취재하며 만난 현지 에너지 전문가 나탈리아 이드리소바는 걱정이 깊었다. 빙하가 줄어 발전기를 돌릴 수량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져서다.
이 일대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 더해도 한국보다 적지만 기후 피해를 정통으로 맞는 중이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에 제공된 기후 금융은 지난 20년을 통틀어 170여억달러에 그쳤고, 그마저도 85%가 대출금 형태였다. 기후변화에도 이자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글로벌 ‘쩐주’(선진국)의 자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번엔 카스피해를 보자. 카스피해는 물과 기름이 만나는 곳이다. 카스피해의 넘실대는 수면 아래에는 수백억배럴의 원유와 세계 7%의 가스가 묻혀 있다. 특히 카스피해 서쪽의 아제르바이잔은 과연 ‘불의 나라’답게 수도 곳곳에서 시추 장비를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가스를 수입할 수 없게 되자 여기저기 손을 벌렸는데 아제르바이잔도 그중 하나다. 경제의 40%를 석유·가스에 의존하는 아제르바이잔으로선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약속대로 2027년까지 가스 공급을 두배로 늘리려면 큰돈을 들여 인프라를 확장해야 한다. ‘유럽의 가스 수요가 5~10년 뒤엔 지금보다 줄 게 분명한데, 당장 급하다는 유럽 말만 믿고 무턱대고 투자를 받았다가 나중에 빚만 떠안는 것 아닐까?’라는 게 아제르바이잔의 고민이다. 가진 게 석유뿐인 나라 앞에서 기름을 더 달라며 계속 달러를 흔들어 대니 발생하는 딜레마다.
이번 기후 총회의 주요 의제는 ‘돈’이다. 정의로운 전환은 저절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개도국이 내민 청구서는 연 1조달러. 참고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세계적으로 7조달러가 화석연료 보조금으로 흘러갔는데 공교롭게도 1조달러가 미국과 유럽 정부에서 나왔다.
과연, 기후 총회라는 ‘진실의 방’에서 어떤 목소리가 흘러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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