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베껴놓고 똑똑한 척, 더는 못 보겠다”…저작권 전쟁 나선 미디어 기업들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2024. 11. 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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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검색 기업 퍼플렉시티 AI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챗GPT 같은 인공지능(AI)을 똑똑하게 만드는 데에 뉴스가 정말 많이 활용됐다는 사실, 혹시 아셨나요? 글을 기반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AI 프로그램들은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뉴스를 학습에 활용하기도 하고, 사용자가 특정 정보를 질문했을 때 온라인 뉴스에서 찾아 답변해 주기도 해요. 전 세계 언론이 매일 쏟아내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만큼 AI에게 정말 중요한 정보 출처인 거죠.

그래서 뉴스 기사의 저작권을 AI 기업들이 무단으로 활용한다는 비난은 꾸준히 제기돼 왔어요. 그리고 유력 언론사가 많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이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했어요.

갈등이 폭발했다고?
최근 미국에선 영향력 있는 언론사들이 AI 기업에 대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요. 지난해까지 주로 음악·영화 등 대중예술 분야의 저작권을 AI가 침해할 가능성 때문에 논란이 이어졌다면, 이번에는 정보와 견해 등을 제공하는 뉴스 분야에서 비슷한 논란이 심화하는 모양새예요.

가장 최근 주목받은 사례는 거대 미디어 그룹인 ‘뉴스코프’가 AI 검색 기업인 ‘퍼플렉시티 AI’를 상대로 지난 21일(현지시간)에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이에요. 뉴스코프는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포스트를 보유한 미디어 기업이고, 퍼플렉시티는 대화 기능에 집중한 챗GPT 같은 경쟁 서비스와 다르게 ‘검색 기능’에 집중하면서 구글을 위협한다는 평가까지 받는 곳이죠. 특히 퍼플렉시티는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와 엔비디아 등 굵직한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쑥쑥 커지는 기업이라 이번 소송은 더욱 주목받았어요.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퍼플렉시티 최고경영자(CEO) <연합뉴스>
소송을 제기한 뉴스코프 측은 퍼플렉시티의 AI 기반 검색 서비스가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뉴욕포스트의 기사와 사설, 기고문 등을 불법적으로 복제·재생산했다고 주장했어요. 콘텐츠를 생산한 뉴스 기업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임승차 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에요.
허락 안 받았으면 잘못 아니야?
퍼플렉시티가 뉴스를 인용하는 방식은 당장 완전한 저작권 침해로 판단하기엔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어요. 사용자가 검색한 내용에 대해 퍼플렉시티의 AI가 답변할 때, 답변에 활용된 뉴스 링크를 함께 첨부하기 때문이에요. 정보 출처를 밝히는 거예요.

그런데도 뉴스코프가 소송을 제기한 건 AI 검색엔진이 답변을 제공하는 방식 때문이에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기존 검색엔진이라면, 이용자는 검색한 내용과 관련한 여러 정보를 그대로 접하게 돼요. 그중에 적합해 보이는 링크를 클릭해서 하나하나 읽어보게 되죠.

하지만 AI는 이 정보들을 요약해서 이용자의 질문에 적합한 하나의 답변만 제공해요. 이런 방식은 언론을 포함해 콘텐츠를 생산한 모든 주체에 피해를 줄 수 있어요. 답변에 출처 링크가 붙어 있어도 사용자가 그걸 클릭해 볼 필요가 없거든요. 이미 답변을 얻었으니까요. 지난해 1년 동안 약 5억 건이었던 퍼플렉시티의 검색 질문(query) 처리량은 올해 들어 한 달에 2억 5000만 건으로 급증했다고 해요. 그만큼 웹사이트를 방문해 직접 콘텐츠를 읽은 사람은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커요.

뉴스코프 측은 소송을 제기하며 “퍼플렉시티의 사업 모델은 전통적 인터넷 검색엔진의 사업 모델과 달리 콘텐츠 생산자에게 사업 기회를 주지 않고, 오히려 콘텐츠 생산자가 수익을 낼 기회를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뉴스코프는 퍼플렉시티가 저작권 침해 건당 15만 달러(약 2억원)를 배상하고 무단 수집 자료는 모두 삭제할 것을 요구했어요. 퍼플렉시티는 이번 소송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았어요.

챗GPT 같은 다른 AI는 어때?
지난해부터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침해 논란이 이어지자, 일부 AI 기업은 언론사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전이든 기술이든 콘텐츠 제공자에게 대가를 내는 방식이겠죠.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경우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뉴스코프와 콘텐츠 이용 파트너십을 체결했어요.

다만 이렇게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례가 아직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오픈AI가 AI 학습에 뉴욕타임스의 콘텐츠를 허락 없이 썼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어요. 뉴욕타임스는 이달 초엔 퍼플렉시티에 ‘허가 없이 기사를 활용해 부당하게 이익을 얻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보냈다고 해요.

오픈 AI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시카고 트리뷴 등 8개 신문사도 지난 4월부터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AI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고, 미국 탐사보도 전문 비영리단체인 탐사보도센터(CIR)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했어요. 아직 소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언론이 AI의 저작권 침해 행위를 직접적으로 지적한 것까지 따지면, 사례는 넘쳐나요.
쉽게 끝나지 않을 전쟁
AI 기업의 콘텐츠 무단 이용과 저작권 침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에요. 곳곳에서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는 콘텐츠 제작자의 주장이 제기되는 건 물론이고, 저작권 침해 사실을 알고 있다는 내부 고발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에요.

오픈AI에서 약 4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올해 8월 회사를 그만둔 한 직원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오픈AI의 저작권법 위반 행위를 폭로했어요. 오픈AI가 사업 초기에 저작권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인터넷에 있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챗GPT를 개발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에요.

물론 오픈AI 측은 법적으로 문제없는 방식을 통해 AI 모델을 구축했다며, 이런 주장을 부정했어요. 앞으로도 한쪽에선 ‘분명히 불법이다’라고 주장하고, 한쪽에선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꽤 오래 펼쳐질 가능성이 커 보여요. 본격적으로 법정 공방이 시작된 미국에서 어떤 명확한 결론이 날 때까지는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쉽게 가리기도 힘들 테고요.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건지, 콘텐츠 제작자와 AI 기업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할지 지켜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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